춘원은
식민지가 아닌 나라에 태어났다면 인생 자체가 달라
그 나라의 근대문학의 대문호로 남았을 가능성이 거의 확실한 양반이지만,
식민지라도 인도에서만 태어났어도
아마 이 양반은 인생 경로를 달리 잡았을 것이다.
태평양전쟁은 한때 밀리던 미국이 일본을 밀어부쳐
마침내 원자탄 투하로 전쟁을 종식시킬 때까지
제법 긴 전쟁기간이었지만
실제로 미국이 일본을 태평양에서 밀어부쳐 섬을 하나씩 다 탈환하고
동경에 폭격까지 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년이 안되는 짧은 기간이었다.
이 시기에 한반도에 살던 지식인들이 도대체 전쟁이 어떻게 끝날지
누가 이기고 있는지도 전혀 모르고,
전쟁이 도대체 어떻게 전개되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는 것은
여운형이 건준과 인공을 가지고 벌인 헤프닝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여운형도 태평양전쟁이 어찌 전개되어 일본이 항복하여 끝났는지 자세히 알고
연합군이 어떻게 조선을 독립시킬 것인지 논의가 구체적으로 어찌 진행되었는지 제대로 알았다면
건준이고 인공이고 시도했을 리가 없었다고 나는 본다.
춘원이 식민지 문인이라도
인도 같이 세상 돌아가는 소식이라도 줏어 들을 수 있는 식민지에서 태어났다면
그가 40년대에 보여주었던 반역적 행보는 걷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미 만들어져버린 역사적 결과물이라 춘원은
수백 수천년 후까지도 한국사가 존재하는 한은 일제말의 행보는 욕을 먹겠지만,
개인적으로 참 안타깝다는 생각을 한다.
윤동주와 송몽규가
2차대전이 어찌 돌아가고 있는지 알았다면 일본 유학을 갔을까?
아마 유학을 포기하고 일찌감치 몸을 감추었을 것이다.
이래저래 2차대전 기간 동안 조선땅안에 전황을 짐작할 수 있는 어떤 소식도 깜깜 했다는 사실 자체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필자는 광복군이건 동북항일연군이건 간에
실제로 조선땅에 정말 필요했던 것은
몇백명 자리 무장독립군이 아니라
조선땅에 2차대전 전황을 제대로 전할 수 있는 방법이 훨씬 더 시급했었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승만의 단파방송은 참으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할 수 있겠는데
문제는 조선땅에 그 단파방송을 들을 수 있는 라디오가 없었다는것이 문제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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