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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식민지 문인 이광수의 인생

by 초야잠필 2024.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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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렵 춘원은 이미 소위 변절한 상태였다.



춘원은  

식민지가 아닌 나라에 태어났다면 인생 자체가 달라 

그 나라의 근대문학의 대문호로 남았을 가능성이 거의 확실한 양반이지만, 

식민지라도 인도에서만 태어났어도 

아마 이 양반은 인생 경로를 달리 잡았을 것이다. 



춘원



태평양전쟁은 한때 밀리던 미국이 일본을 밀어부쳐 

마침내 원자탄 투하로 전쟁을 종식시킬 때까지 

제법 긴 전쟁기간이었지만 

실제로 미국이 일본을 태평양에서 밀어부쳐 섬을 하나씩 다 탈환하고
 
동경에 폭격까지 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년이 안되는 짧은 기간이었다. 

이 시기에 한반도에 살던 지식인들이 도대체 전쟁이 어떻게 끝날지
누가 이기고 있는지도 전혀 모르고, 

전쟁이 도대체 어떻게 전개되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는 것은 
여운형이 건준과 인공을 가지고 벌인 헤프닝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여운형도 태평양전쟁이 어찌 전개되어 일본이 항복하여 끝났는지 자세히 알고 

연합군이 어떻게 조선을 독립시킬 것인지 논의가 구체적으로 어찌 진행되었는지 제대로 알았다면

건준이고 인공이고 시도했을 리가 없었다고 나는 본다. 



이 감옥 문을 나서며 춘원은 변절한다.



춘원이 식민지 문인이라도 

인도 같이 세상 돌아가는 소식이라도 줏어 들을 수 있는 식민지에서 태어났다면 

그가 40년대에 보여주었던 반역적 행보는 걷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미 만들어져버린 역사적 결과물이라 춘원은

수백 수천년 후까지도 한국사가 존재하는 한은 일제말의 행보는 욕을 먹겠지만, 

개인적으로 참 안타깝다는 생각을 한다. 



윤동주(왼쪽)



윤동주와 송몽규가 

2차대전이 어찌 돌아가고 있는지 알았다면 일본 유학을 갔을까? 

아마 유학을 포기하고 일찌감치 몸을 감추었을 것이다. 

이래저래 2차대전 기간 동안 조선땅안에 전황을 짐작할 수 있는 어떤 소식도 깜깜 했다는 사실 자체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필자는 광복군이건 동북항일연군이건 간에 

실제로 조선땅에 정말 필요했던 것은 

몇백명 자리 무장독립군이 아니라 

조선땅에 2차대전 전황을 제대로 전할 수 있는 방법이 훨씬 더 시급했었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승만의 단파방송은 참으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할 수 있겠는데

문제는 조선땅에 그 단파방송을 들을 수 있는 라디오가 없었다는것이 문제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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