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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석탑은 상, 하층 이중 기단 위에 3개 탑신석塔身石과 3개 옥개석玉蓋石으로 구성된다.
각 층 옥개석에는 야트막한 받침이 표현되어 있고 상륜부相輪部는 간략한 보주寶珠 형태로 마감되었다.
전체 모습에서 신라계 석탑 양식을 계승한 고려시대 석탑 수법을 찾아 볼 수 있다.
부여 전통문화대학 교정에 선 이 석탑을 저리 설명하거니와
비단 저 탑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고려시대 탑파에는 관성으로 신라석탑을 계승한 고려 석탑 운운하는 대목이 보인다.
미안하나 저 말 하나마나요 그래서 췌언贅言에 지나지 않는다.
고려가 신라를 계승했지 350년 전에 고구려 백제를 계승했겠는가?
고려가 고구려 후예를 표방했지만 그건 반란을 획책한 땅이 옛 고구려 영역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지 그 직접 자양분은 신라일진댄 그들이 무슨 용가리 통뼈라고 고구려를 계승한단 말인가?
더구나 고구려 유산으로 간주되는 석탑은 씨가 마른 상황에서, 고구려 사람은 단 한 명도 남지 않은 마당에 무슨 고구려를 계승하겠는가?
하나마나한 저런 말이 있어 보일지 모르나 정말로 없어 보이는 빈깡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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