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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진흥왕이 순수비 세운 데가 하필 비봉인지를 제대로 물어야 한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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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의문을 더는 미룰 수도 없고 더는 미뤄서도 안 된다.

의문이 없는 데서 무슨 창안創案이 나오겠는가?




사방을 조망하기 좋아서?

그에선 이론이 있을 수가 없다.

문제는 저런 데가 많을 텐데 하필 저 지점인가다.





이번 신영동 고려시대 건물터 너머 저 현대식 건물들 뒤쪽으로 북한산 자락이 펼쳐진다.

형제봉을 기점으로 비봉 승가사로 어어지는 산록이다.

지금은 건물들에 가려 잘 보이지 아니하나 이곳이 바로 정통으로 비봉이 조망하는 구기동 세검정 골짜기다.




왜 저 지점에 순수비를 세웠는가?

저 비봉에서 당시 한강 하류 유역을 다스리던 광역행정구역 치소治所가 있던 지점이기 때문이다.

당시 이 치소에서는 저 비봉 순수비가 보였다.

치소도 보이지 않는 데다가 저런 중요한 기념비를 세웠겠는가?

간단하다.

이번에 고려시대 대규모 건물채가 발견된 이 일대가 바로 진흥왕시대 한강 하류 유역을 관리하던 신주新州 혹은 북한산주北漢山州 주치州治가 있던 데다.

어디인가?

이번 신영동 유적에선 신라시대 흔적이 아직 보이지 아니하나 장의사가 있던 데가 신라시대 기와가 확인되고 있다.

장의사 터와 그 주변이 바로 김유신 조부 김무력金武力이 지방장관으로 근무한 곳이다.

묻지 않는 데서 의문은 없고 의문이 없는 데서 무슨 창발성을 기대하겠는가?

이런 의문조차 품지 않은 선학들을 나는 선학이라 인정할 수 없다.

그들은 바보 멍충이일 뿐이며 국록만 축낸 學的  기생충에 지나지 않는다.

선생이고 나발이고 선생다워야 선생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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