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통일 이후 신라는 일본의 견당사를 노골적으로 견제했고
일본은 그 이전 수백년간 이용했던 중국행 항로로 한반도 남해안과 서해안을 거쳐 황해를 도해하는 항로를 포기하고
목숨을 걸고 동지나해를 가로지르는 견당사의 길을 택해야 했다.
그런데,
신라는 왜 이렇게 죽도록 일본의 견당사를 방해했을까?
따지고 보면 한반도를 경유하는 일본의 중국행 루트는
일본에서 출발하면 그게 중국행 항로지만
반대로 한국에서 보자면 이건 대동강유역에서 한반도를 거쳐 일본열도로 이어지는
아주 오래된 해양항로였겠다.
이 해양항로는 낙랑-마한-변한-왜로 이어졌지만,
정작 신라는 이 항로의 외곽지대에 비켜져 있었고
신라 건국이후 계속된 서진 정책은 사실상
이 항로에 대한 직접적 위협이나 다름없었다.
따라서 왜는 자연스럽게 이 항로선상에 있는 한반도 국가와 연합하고
신라와는 대쳑점에 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신라는 통일 후 왜의 견당사를 극구 방해한 이유는,
뭐 해묵은 감정 이런 거가 문제가 아니라
이 항로에 왜의 선단이 진입하는것을 방치하면 언제든지 한반도 서남부의 구 백제의 유민과
결탁될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왜는 삼국통일 이후
단한번도 이 항로는 더이상 이용하지 못했고
폭풍을 만나 난파했을 때나 어쩔수 없이 신라에 도움을 청하는 정도였다.
신라 입장에서 본다면 이 항로는 "비신라적인 요소"의 집합체라고도 볼수 있겠는데,
이 항로의 정확히 중간 지점에서 신라하대, "청해진"이 탄생했다는 것은 어쩌면
그런의미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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