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쓰이는 말 중에 "기마민족"이라는 말이 있다.
따지고 보면 이 말처럼 모호한 의미의 말은 없다.
사실 역사상 진정한 의미에서 "기마민족"이라는 것이 있기나 한건지 의문이다. 특히 우리 한국인들이 스스로를 "기마민족"이라고 부르는 것은 넌센스라고 본다. 한국은 일본에 비해서는 분명히 말을 이용한 시기가 훨씬 이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라시아 대륙전체를 보자면 말을 타고 다니거나 전쟁을 시작한 시기가 상대적으로 빨랐던 것도 아니고, 또 한국인의 조상들 대부분이 원래부터 말을 타고 다녔던 "기마민족"도 아니다. 우리가 말을 도입하여 이를 타고 다녔던 시기는 생각보다 그 기원이 많이 올라가지 않을 수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후술하겠다). 무엇보다 수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문명은 유목문화가 아니라 농경문화에 뿌리 내린것이다.
태어나서 말을 한번도 본적이 없던 종족도 사육마를 들여와 체계적으로 키우기 시작하면 불과 몇백년 정도면 기마전을 능숙하게 구사한다. 일본사에서 유명한 겐페이합전(源平合戦)에서 겐지와 헤이지의 다툼의 승부를 사실상 결정지었던 이치노타니전투 (一ノ谷の戦い)에서는 사무라이들이 기병을 자유자재로 부리고 있었다. 이 시기에는 동일본 지역인 東国일대에는 말 사육장이 다수 설치되어 기병에게 공급할 전투마가 대량 사육되고 있었고.
일본에 말이 처음 도입된것이 5세기라고 하고 이치노타니 전투가 1184년에 벌어졌으니 말을 한번도 본적이 없던 사람들이 6백여년 만에 이미 화려한 기병전을 운용할 수 있는 경제적-군사적 기반을 완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마음만 먹으면 사실 6백년도 긴 세월이다.
생각해보면 북방민족에 자극받아 자국의 군사를 기병으로 일신한 趙 武靈王이나, 흉노와의 전쟁에 와신상담 끝에 마침내 대규모 기병을 동원하여 이를 토벌하는데 성공한 서한의 경우도 불과 수십년의 짧은 기간 동안에 자신들의 군대를 기병으로 일신한것이다. "기마민족"은 이를 양성하고자 하는 최고 정치권력의 강인한 목적의식만 있다면 당대안에 키워내는 것도 가능한 것인데,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고구려=기마민족"이라는 개념은 과연 그 성립의 상한이 언제쯤이었을지 한번쯤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고구려인들 역시 기마전을 수행하기 시작한 역사도 우리 생각만큼 그렇게 길지 않을 수 있다.
일본사에서 손꼽는 명장면으로 미나모토씨가 헤이케군을 격파한 이치노타니의 전투 (一ノ谷の戦い)와 오다 노부나가가 소수의 병력으로 이마가와 요시모토 군을 격파한 오케하자마의 전투 (桶狭間の戦い)를 꼽는데 두 전투 모두 기병을 이용한 기습전이다. 일본은 말이 도입된 시기가 구대륙에서 가장 늦은 축에 들어갈 것 같은데 빠른 속도로 이를 전투에 채택하여 헤이안 말기에 이르면 무사들은 기병을 자유자재로 이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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