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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신라인들은 왜 비단벌레를 애호했는가?

by taeshik.kim 2018.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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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불사(不死)의 염원, 옥충(玉蟲) 

    김태식 연합뉴스 문화부 기자

신라 상고기 대표적 무덤 양식인 경주지역 적석목곽분(돌무지덧널무덤)에서 치장물로 자주 출토되는 갑각류의 일종인 옥충(玉蟲)은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비단벌레라고 한다. 사실 옥충이란 말은 전통시대 한반도와 중국 문헌에서는 좀처럼 사례를 찾을 수 없다. 대신 옥충 혹은 비단벌레는 길정(吉丁) 혹은 길정충(吉丁蟲)이라는 이름으로 아주 드물게 보일 뿐이다. 


경남 밀양에서 발견된 비단벌레



 일본에서 발간된 가장 대표적인 한자어 사전인 『대한화사전』(大漢和辭典)에서는 길정(吉丁) 혹은 길정충(吉丁蟲)에는 옥충을 ‘타마무시’(タマムシ)라고 읽는다고 하고 하면서 “모양이 아름다워 옥충(옥과같은 벌레라는 뜻)이라고 부른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면서 다른 명칭으로 길정충(吉丁蟲)과 금화충(金花蟲)을 들고 있다. 어떤 이름이건 그만큼 비단벌레가 색깔과 모양이 영롱함을 의미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국내 가장 대표적인 인터넷 백과사전인 네이버사전에서는 이러한 비단벌레가 딱정벌레 목 비단벌레과에 속하는 곤충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몸길이 30∼40mm이다. 몸 빛깔은 녹색 또는 금록색이며 화려한 광택이 난다. 앞가슴 등판과 앞날개에 구릿빛을 띤 자색(紫色)의 굵은 세로띠가 있다. 몸의 배면은 금록색이고 가슴과 배의 중앙부는 금적색(金赤色)이다. 수컷은 겹눈이 돌출하고 배 끝이 삼각형으로 파여 있으며 몸의 양쪽에 연한 털이 암컷보다 많다. 아름답고 큰 비단벌레이지만 유충은 벚나무·팽나무·가시나무 등의 물관부를 먹어 들어가는 해충이다. 성충의 앞날개가 장식물로 이용된다. 한국(남부·중부) ·일본·타이완 등지에 분포한다. 

요컨대 그 빛깔이나 모양이 아름다운 것을 제외하면 바퀴벌레와 같은 종류에 속하는 곤충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비단벌레는 그 화려한 광채와 죽어도 껍질이 바스러지지 않는 등의 특성으로 인해 의복이라든가 마구류 등을 장식하는 치렛거리로 애용된다는 점에서 다른 곤충들과는 큰‘신분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주목할 것은 중국 명(明)나라 본초학자(本草學者) 이시진(李時珍.1518∼1593)이 엮은 방대한 약학서(藥學書) 『본초강목』(本草綱目)에 비단벌레가 소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대단히 주의할 것은『본초강목』은 약학서라는 점이다. 이러한 약학서에 비단벌레가 ‘길정충’(吉丁蟲)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고 있다는 것은 이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더라도 비단벌레가 약물로 쓰이기도 했다는 뜻이다. 


비단벌레를 관광상품화한 경주 비단벌레 전기자동차




실제『본초강목』에서는 “길정충이란 장기(藏器)에서 말하기를, ‘갑각류 곤충인데 등에는 짙은 녹색을 띠고 있고 날개가 껍데기 아래에 있으며 영남의 빈주(賓州) 징주(澄州) 등지의 여러 주(州)에서 나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잡아다가 허리띠에 둘러차고 있으면, 사람으로 하여금 서로 좋아하고 사랑하게 만든다. 미약(媚藥)이다”고 적고 있다. 여기서 궁금증이 증폭되는 것은 도대체 미약(媚藥)이란 무엇인가? 미약에 대해 각종 자전은 거의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것은 색욕을 돋구는 약이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사정은 중국 광동 지방 지리지인『광동통지』(廣東通志)에서도 그대로 확인되고 있으니 이곳에 이르기를 길정충은“사람들에게 교태를 일으키게 한다”고 덧붙이고 있다. 

이로 볼 때 길정충은 의복 등의 장식물로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일종의 약제품으로도 애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효능이 정말로 성욕 혹은 교태를 자아내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으나 중요한 것은 이 화려찬란한 빛을 발하는 이 갑각류 곤충이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효능을 갖춘 약품으로 인식되었다는 사실이다. 

비단벌레와 관련해 또 하나 주목할 것은 그 주된 서식지가 한반도의 경우 대체로 중부 이남 남쪽 지방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사정은 일본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되는데, 위『본초강목』이나『광동통지』에서 보았듯이 중국에서도 대만을 포함해 남쪽 지역에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중국 고문헌에서 이러한 비단벌레에 대한 기록이 드문 까닭이 아마도 이러한 서식지의 특성에서 비롯되었을 공산이 크다 하겠다. 


황남대총 남분 부곽 출토 비단벌레 장식 말안장.




비단벌레와 관련된 것으로 우리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외국 문화재는 일본 호류지(法隆寺)라고 하는 아주 오래된 불교사찰에서 현전하고 있는 옥충주자(玉蟲廚子)일 것이다. 이곳 대보장원(大寶藏院)에 소장된 이 옥충주자는 옻칠을 입힌 이 목공예품으로 명칭이 시사하듯이 천 마리가 넘은 비단벌레 등껍데기로 무늬를 낸 불감(佛龕)이다. 이것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전생에 호랑이에게 몸을 공양하는 장면과 계송을 듣기 위해 나찰에게 몸을 보시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불교 용구를 장식하는데 비단벌레가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을 근거로 비단벌레가 불교와 모종의 밀접한 관계가 있는 곤충이 아닐까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성급하다. 왜냐하면 불교가 상륙하기 전, 혹은 상륙하던 바로 그 무렵에 조성됐음이 확실한 신라의 돌무지덧널무덤에서 비단벌레는 이미 의복이라든가 마구류 등의 치장물로 사용된 흔적이 너무나도 뚜렷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라측 고고학 발굴성과
를 고려할 때 비단벌레를 치렛거리로 쓰는 전통은 불교와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그보다는 오히려 나중에 새로 도입된 불교가 종전에 사용되던 비단벌레 장식을 도입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황남대총 남분 출토 비단벌레 장식 허리띠 장식




한반도의 경우 신라 무덤 외에 비단벌레를 이용한 유물로 보고가 된 것으로는 평안남도 중화군 진파리 1호분에서 발견된 금동투조(金銅透彫) 관식금구(節冠金具)가 있다. 이 유물은 유려한 용봉(龍鳳) 무늬 및 용봉을 둘러싸고 흘러가는 구름무늬를 새기고 있으며 그 중앙에는 삼족오(三足烏)라고 하는 세 발 달린 까마귀를 형상화하고 있다. 흔히 삼족오는 태양(太陽)과 늘 붙어 다니기 때문에 그 자체가 태양을 상징하는 것으로 파악되기도 한다. 한데 비단벌레 껍데기가 바로 이러한 태양 및 삼족오 무늬 부근에서 장식물로 붙어있었던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비단벌레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상징성이 있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게 된다. 비단벌레 날개와 함께 형상화된 용이나 봉황, 태양, 삼족오는 말할 것도 없이 도가 혹은 신선사상과 뗄 수 없는 상징들이다. 그러니 이들과 함께 비단벌레가 장식물로 활용되었다는 것은 비단벌레 또한 신선사상과 밀접한 곤충임을 추정케 하고 있다. 

어떻든 지금까지 간단한 고찰을 통해 비단벌레에서 우리는 의복 등의 치렛거리, 성욕을 자아내는 일종의 비아그라 같은 약품성 및 영혼불명, 영생불사를 추구하는 신선사상이라는 세 가지 코드를 적출하게 됐다. 여기서 하나 더 지적할 것은 전근대 동양사회에서 약물 혹은 약품은 그 자체가 종교사적으로는 선약(仙藥)이라는 특성을 아울러 지닌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한방에서 약재로 언급된 것은 거의 예외 없이 죽어도 죽지 않는다는 선약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동양 한의학이 도교와 밀접성을 갖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신라 돌무지덧널무덤에서 검출되는 신라의 주된 사상적 흐름은 신선사상 혹은 그와 사촌관계에 있는 도교였다. 그것은 비단벌레에서도 여실히 확인했다. 여기서 신라의 신선사상이라는 광범위한 주제를 다 다룰 수는 없으나, 엄청난 껴묻거리를 장착함 무덤 구조 자체는 죽어서도 영원한 삶을 꿈꾼 신라인들의 의식의 반영이며, 그것은 바로 영생불사(永生不死)를 추구하는 도교의 세계였다. 

앞서 필자는 비단벌레가 일종의 선약, 혹은 불사약으로 간주됐다고 했거니와 적석목곽묘에는 도가적 신선사상에서 언급한 다른 많은 불사약들이 검출되고 있으니, 천마총 발굴에서 목곽 밑바닥을 온통 붉게 물들인 붉은 색 안료가 수은(水銀)이 주성분인 주사(朱砂)라는 사실은 필자의 주장을 뒷받침하고도 남음이 있다. 수은은 흔히 독약으로 인식되고 있으나 도가에서는 가장 영묘한 불사약으로 간주됐다. 나아가 이들 적석목곽분에서는 또 다른 선약(仙藥)인 운모(雲母) 또한 다량으로 검출되고 있다. 수은이라든가 운모가 불로불사약으로 간주된 증거는 저 동진(東晋)시대 도사이자 방사인 갈홍(葛洪. 283~343)이 찬한『포박자』(抱朴子)라는 도교 경전에서 명확하게 관찰된다. 나아가 이들 적석목관분에서 무수하게 검출되는 황금과 은 및 각종 구슬 또한 봉래·방장·영주 삼산의 꼭대기를 장식하는 귀금속이자 그 자체가 영원불멸의 표상이었으며, 나아가 그 자체가 불사와 영원한 삶에 대한 보증수표인 선약(仙藥)이기도 했다. 

비단벌레가 이미 신라 상고시대에 의복이라든가, 마구(馬具)류 등지에 장식물로 애용된 것은 그 뛰어난 장식성과 함께 이러한 종교적 의미를 아울러 내포했을 것이다. 요컨대 비단벌레는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라 거기에는 죽어도 죽지 않는다는 불사(不死)를 향한 신라인들의 염원이 서려 있었던 것이다. 

김태식|저서『화랑세기, 또 하나의 신라』2002, 김영사 

출전 : 김태식, <특별기고 - 불사(不死)의 염원, 옥충(玉蟲)>, 《민속소식》97, 국립민속박물관, 2003. 9, pp. 4~5. 

이 글은 아래를 통해 원문 pdf를 제공한다. 

http://www.nfm.go.kr/_Upload/BALGANBOOK/342/00.pdf?fbclid=IwAR3auas1V7qyo-kxU18__HLw8uSEcDx9gc_lohlqASoS1kfklXMHsGew5vM



복원한 비단벌레 장식 신라시대 비단벌레 장식 말안장.



이 글을 나는 다음과 같이 자평한 적이 있다. (페이스북 그룹 '김태식역사문화라이브러리' November 20, 2017 ) 


비단벌레를 찾아서


신라시대가 토해낸 유물 중에 독특함을 자랑하는 것 중 하나가 비단벌레 장식품이다. 오색영롱한 날개 죽지를 마구와 같은 데다가 장식으로 쓴 것들이 더러 출토한 것이다. 이를 일본에서는 옥충(玉蟲)이라 표기하면서 ‘타마무시(タマムシ)’라 읽는다. 일본에서는 법륭사 소장품이던 옥충주자(玉蟲廚子)가 너무나 저명하다.

그렇다면 왜 비단벌레인가?

이를 아무도 묻지도 않았다. 모르겠다, 물은 사람이 있는데 내가 모르고 있는지를. 하지만 아무도 몰랐다고 나는 믿는다. 그러니깐 비단벌레를 장식한 유물만 알았지, 왜 하필 비단벌레인 줄을 물을 생각조차 없었다. 묻지를 않으니 답이 있을 리가 있겠는가? 모든 의문은 why에서 출발한다고 나는 믿는다.

지금은 비단벌레라고 하면 하나의 상식이 통용한다. 비단벌레에 다름 아닌 미약(媚藥) 성분이 있어 주로 여성들이 남자들의 성적인 환심을 사고자 그것을 착용물로 애용하기도 했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사실이 어떻게 밝혀지게 되었는가? 

국립민속박물관 소식지로 《민속소식》이 있다. 2003년 9월에 발간된 통권 97호에 나는 특별기고 형태로 ‘불사(不死)의 염원 옥충(玉蟲)’을 실었다. (원문에는 오타가 나서 ‘염원’이 ‘영원’이 되어 있다) 그에서 나는 비단벌레를 좀 더 다른 차원에서 접근하고자 했으며, 그것을 이 글로 정리한 것이다. 

당시 내가 이 글을 투고하게 된 사연이 좀 있다. 그때 비단벌레가 잠깐 문화재 업계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에 따라 내가 이 문제에 지독히도 천착하고 관련 기사도 여러 번 썼으니, 그것을 눈여겨 본 민속박물관에서 나에게 그와 관련되는 글 하나 투고를 요청한 것이다.

비단벌레를 접근하려면 우선 그에 대한 정확한 명칭을 알아야 했다. 이를 과거에도 비단벌레라 불렀을 리는 만무하니, 그것을 지칭하는 한자어를 알아야 했다. 개중 하나가 바로 玉蟲이었다. 한데 문제가 있었다. 이 玉蟲은 일본식 한자어였다. 일본에서 倭人들이 만들어 낸 말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에 해당하는 한자어가 무엇일까? 고민고민하다 내가 그때 생각한 것이 모로하시가 일생을 투자해 만들어낸 한자 자전인 대한화사전(大漢和辭典)이었다. 이에는 玉蟲이 분명히 실려 있을 것으로 봤다. 혹여 그에서 무슨 단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했다.

그리하여 이 사전을 뒤졌다. 그때만 해도 나는 이 사전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지만, 다행스럽게도 연합뉴스 자료실에 이 사전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사전에 玉蟲을 소개하면서 길정(吉丁) 혹은 길정충(吉丁蟲)이라 하면서 “모양이 아름다워 玉蟲이라 부른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사전은 이칭으로서 길정충(吉丁蟲)과 금화충(金花蟲)을 들었다. 아무래도 이것들이 본래 중국에서 일컫는 표기인 듯했다.

이런 곤충은 말할 것도 없이 약학서를 봐야 풍부한 지식을 얻는다. 그리하여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시진(李時珍.1518∼1593)의 본초학서인 본초강목(本草綱目)을 뒤지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 본초강목에는 ‘길정충(吉丁蟲)’이 보였다. 그러면서 이를 부연하기를 “갑각류 곤충인데 등에는 짙은 녹색을 띠고 있고 날개가 껍데기 아래에 있으며 영남의 빈주(賓州) 징주(澄州) 등지의 여러 주(州)에서 나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잡아다가 허리띠에 둘러차고 있으면, 사람으로 하여금 서로 좋아하고 사랑하게 만든다. 미약(媚藥)이다”고 적고 있는 것이 아닌가? 

추가 조사를 통해 이와 거의 흡사한 내용이 중국 광동 지방 지리지인 광동통지(廣東通志)에서도 나온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곳에서는 길정충이 “사람들에게 교태를 일으키게 한다”고 덧붙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걸로 모든 것이 끝났다. 

첫째, 왜 비단벌레가 장식물로 쓰였는지를 해명했다. 그 자체 뛰어난 장식성도 있거니와, 그에는 미약 성분이 있다 해서 그것을 애용한 것이다. 

둘째, 그 서식학적인 특징도 간취했다. 서식지는 남방이었다.

그것을 해명하는 길을 감히 내가 열었다고 자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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