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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신석기시대 한반도는 거지 소굴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0.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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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동 신석기시대 선사주거지라고 복원해 놓은 움집이다.

글쎄....

이걸 그때를 산 사람들이 와서 본다면 뭐라 할까?

와 비슷하다?

이럴까?

아님

좃까!

이럴까?




난 아무래도 후자 같어.
증거 있냐고?

없어.
근데 그럴 것만 같어.

(2017. 11. 10)

***

선사시대 생활상이라고 복원해 놓은 것들이 전국이 이 모양이다.

집도 거지 소굴이고 입는 옷은 걸치지 않거나 거지랑 진배없다.

저런 맨바닥 땅을 파고는 덕석 같은 거 대강 깔고 잤단다.

입돌아간다. 얼어죽는다. 비 줄줄 샌다.

설혹 저 구조라 해도 침대없이 생활 못한다. 저리 해놓고 그 안쪽 복판에서 캠프파이어했다고?

통닭구이될 일 있니?

토기 석기에 정신팔려 그 시대 생활상 복원은 생각해보지도 않은 한국고고학 참상이다.

저 글에 많은 댓글이 있지만 김충배 선생 다음 글이 음미할 만해 전재한다. 다만 저에서 배형은 저 꼴을 건축학 탓으로 돌렸지만 결국 고고학 문제다.

신석기시대 사람들의 집 형태는 생각보다 다양합니다. 암사동 형태는 사실 초기 움집을 고안한 몇몇 건축학자의 스케치에서 비롯한 것이며 고민해서 복원한 예라고 하긴 어렵습니다. 당시대 사람들의 옷차림새도 거의 상거지꼴로 해오다가 최근에야 옷이라고 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고 있죠.

기술문화적 특성들은 원초적 발명이 어렵고 파생적 기술은 금방 확산됩니다. 방추차를 사용하여 실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이미 옷감을 직조할 능력이 있었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옷감을 바탕으로 바늘로 의복을 만드는 파생은 금방 따라가는 기술이죠. 일본 죠몬인들의 복원상이 직조 옷감을 바탕으로 한 것은 바로 이런 문화기술의 발달을 유추한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왜 굳이 신석기시대 사람들을 원시인 취급해 왔을까요. 그 해답은 초기 고고학 박물관의 발달사와 연관된 것입니다. 고고학 박물관들이 발달한 것은 사회주의국가들입니다. 유물사관에 입각한 사회주의 역사 발전 단계 설정에 따라 원시공동체사회의 문화 정도는 매우 원시적이어야 하는 것이고 이런 입장을 반영한 공산권 복원 양상을 비판없이 수용한 결과 최근까지 정말 눈뜨고 보기 어려운 그야말로 원시적인 형태의 복원이 이루어 진 것이죠...이제 개선할 때가 된 듯 합니다.

(이한용) 구석기.신석기.청동기 사람 모두 가죽치마 입고 웃통벗고 돌들고 멧돼지 쫓아다님. 배경만 석기.토기.고인돌로 바뀜. 충배 선생 말대로 선사인=원시인=미개인=야만인=무지랭이로 인식 하는 것이 개선 안 되는 문제. 그래서 다들 거지꼴을 하고 있는듯.. 후기구석기 시대에 이미 엄청난 수준의 개인 치장품이 등장하자나요. 궁금하신 분들은 전곡선사박물관 특별전 구석기비너스가 부르는 노래를 관람하시길 추천합니당.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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