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필자는 요즘 wet lab에서 dry lab으로 연구의 형태를 바꾸면서
여러 가지 조선시대 자료를 의학적 입장에서 검토하고 있는 바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조선시대 검안 서류다.
https://muwonrok.blogspot.com/
Murder Investigation Records of Joseon Dynasty-Paleopathological Review
Even before the 20th century, the heritage of forensic works and scientific autopsy based on rationalism created, developed, and reached a considerable level in East Asia. Many reports on murders before the 20th century remain in the royal library of the J
muwonrok.blogspot.com
조선시대 검안 서류의 기록을 의학적 입장에서 분석하여 이를 논문화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조선시대 검안 서류는 필자 이전에 이미 선구자적 혜안을 가지고 이 자료에 천착한 분이 많다.
다만 이 분들 업적은 대부분 사회사에 집중해 있어 필자와는 약간 결이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필자는 이 작업을 통해 조선시대 사람들의 죽음의 기전, 죽음의 이유를 파고 들어가는 일을 하고 있는 바,
자세한 내역은 위 링크를 참고해 주기 바란다.

각설하고-.
이 조선시대 검안 서류에는 살인사건 피의자들에 대한 취조 기록이 있는데
이 취조기록은 매우 자세하여 그 당시 사회상을 들여다 볼 부분이 많다.
필자 이전 대부분의 검안서류에 대한 연구는 바로 이 부분, 이 기록에 집중하여 당시의 사회상을 분석한 것이 많았는데,
필자의 입장에서는 이 부분은 목적한 연구에서는 약간 곁가지의 내용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 취조 기록을 보며 느낀 것은
호적에서 묘사한 당시 사회상과
묘하게 다르다는 생각을 취조 기록을 볼 때마다 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렇다.
우리나라 조선시대 호적에는 많은 사람이 상상하듯이,
호적에 "양반"이라고 적어 놓는 경우는 없다.
우리나라 일제시대에 호적 조사를 했을 때 직업을 쓰라고 하니,
거기다 "양반"이라고 써 놓은 사람이 있다던가.
이것을 보고 우리나라 신분제도가 얼마나 강고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라 촌평한 논문도 봤는데,
재미있는 것은 조선시대 호적에는 "양반"이라던가 "중인"이라던가, "평민" 이라는 기록은 전혀 볼 수 없다.
단지 양반으로 볼 만한 직역이 적혀 있는가,
집안 호구에는 노비가 얼마나 있는가,
부계 처가 여덟 분 조상 이름이 제대로 적혀 있는가 등으로
양반이라는 것을 점칠 뿐이지,
심지어는 향촌에서는 양반과 중인의 구분도 호적을 대충 봐서는 분명히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말하자면 조선에 사족들 위세가 기세 등등하던 시절에도
조선의 호적은 철저히 "양천제"에 기반한 것이었지,
"반상제"에 기반한 기록이 절대로 아니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양천제"에 기반하여 18-19세기 양반 직역인 유학이 점점 늘어나자,
호적으로는 자신의 신분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정통 양반"들은
청금록이나 향안 등 호적 외의 또 다른 명부를 통해
자신들의 신분을 보장 받고자 기도하는 것이다.
청금록 향안이야 그 유래가 오래되었겠지만
이 시점에 이르면 본래 목적은 무엇이든간에
향촌에서 자꾸 숫자가 늘어가는 모칭 유학들로부터
자신들의 신분을 보장받자고 만들어 낸
정통파 양반 명부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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