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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사전

쓰다 소우키치(진전좌우길津田左右吉 つだ そうきち)

by 한량 taeshik.kim 2018. 3. 11.


1873.10.3~1961.12.4(明治 6~昭和 36)


일본어 원음에 가깝게 표기하면 '쯔다 소우키치', 현행 외래어 표기법으로는 쓰다 소키치다. 歷史學者. 본명은 津田親文이다. 기후현岐阜縣 米田東?井의 士族 집안에서 태어났다. 1887년(明治 20) 國民新聞 창간호의 田口卯吉 논설 「國を建つるの他は幾何ぞ」에 깊은 감명을 받고는 나중에 도쿄전문학교東京專門學敎 방어정치과邦語政治科에 입학해 1891년(明治24)에 졸업한다. 澤柳政太郞에게 寄寓했다. 그 뒤 富山縣 本願寺 別院 部屬學敎 교수로 일하다가 상경해 시라토리 구라키치(백조고길白鳥庫吉) 후원을 받는다. 또 中等敎師를 군마현립중학群馬縣立中學 치바현립중학千葉縣立中學 宇都宮中學 치바중학교千葉中學校 교사, 독일협회중학교獨逸協會中學學校 교사 등으로 일한다. 교과서 『신찬동양사新撰東洋史』『국사교과서國史敎科書』 출판에 종사한 일도 있었다. 


1907년(明治40)에는 만선지리역사조사실滿鮮地理歷史調査室 연구원이 되어 본격적인 연구조사 생활을 시작하다가 1918년에 와세다대학 교수에 취임한다. 


1939년 東大法學部 東洋政治思想史講座에 출강했다가 황실 존엄성을 모독했다는 공격을 받고 이듬해인 1940년 「神代史の硏究」를 비롯한 4종 저서가 발매금지되고 출판법出版法 위반으로 기소되고 법적 투쟁 끝에 1942년 유죄有罪가 확정된다. 이에 불복한 그는 상고해 재판을 벌여 1944년 면소免訴 판결을 받는다. 




태평양전쟁 말엽에는 공습을 피해 平泉이란 곳으로 소개疎開했다가 전쟁이 끝나고 5년이 지난 뒤인 1950에야 동경으로 돌아온다. 그 사이 1947년에 제국학사원帝國學士院 회원(우리의 대한민국학술원에 해당)이 되고 1949년에는 문화훈장文化勳章을 수훈受勳했다. 


1951년에는 문화공로상文化功勞賞을 수상했다. 실증주의적 사학에 기초해 신화를 부정하는 견해를 지녔으면서도 천황제에 대해서는 줄곧 옹호론을 제창해 마르크시즘 사관 학파들에게 거센 공격을 받는다. 사후에 《진전좌우길전집津田左右吉全集》이 발간됐다.


【학문 자취】 

1913년 고증학에 기초를 둔 「朝鮮歷史地理」를 출판한다. 이어 같은 해에 스승인 시라토리白鳥를 비판하는 형식을 띤 논문을 기초로 「神典の解釋」을 추진해 《神代史の新しい硏究 신대사의 새로운 연구》(1913)에 발표하고, 이를 출발점으로 삼아 《古事記及び日本書紀の新硏究 고사기 및 일본서기의 신연구》(1919),이의 개정改訂판으로서 《古事記及日本書紀の硏究 고사기 및 일본서기 연구》(1924)를 간행했으며, 《神代史の硏究 신대사의 연구》(1924)를 거쳐 『日本古典の硏究』를 보정(補正)했다. 물론 그의 기본형이라 할 수 있는 『神代史の新しい硏究』 속에 보인 주된 틀은 변함이 없으나 자기비판을 거듭 가하고 있다. 이런 업적은 학문적인 고증에 힘쓰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기기記紀, 즉,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를 주된 텍스트로 삼아 황실皇室 유래를 추적한 그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여기에는 정치적 작위가 감지되고,전설이나 민간설화로 윤색潤飾이 더해져 있다고 말하고 있다. 시라토리白鳥 비판에서 출발하고 있듯이 시라토리와는 견해가 다른 점이 많다. 그 중 하나로 《文學に現はれたる我が國民思想の硏究 문학에 나타난 우리 국민사상의 연구》를 들 수 있다. 하지만 이 저작에서부터 神代史の新しい硏究》가 쓰다사학津田史學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쓰다사학津田史學의 지향志向】

쓰다津田의 지적이면서 정적情的인 관심은 고전적古典的, 현대적 지식, 藝術의 흡수에 탐욕하는 것으로써,항상 개성적 비판력 육성에 힘써 문학청년적인 낭만주의적 경향을 지니며,광기狂氣와 풍아風雅 사이에서 산다. 메이지明治 계몽사상가의 정신을 계승해 주체적 비판정신에 의해 정치비판적인 성향을 지니며,그것이 독자성을 지닌 요인이 되었다. 쓰다는 유신사維新史에 대한 관심 또한 매우 강해 친번(親藩)의 영지(領地)에서 태어난 본가인 佐幕派적인 사관에 서 있다. 따라서 유신사를 쓸 뜻을 계속 표명했다. 그의 국민사상 연구는 존왕(尊王) 사상은 결코 倒幕 사상은 아니었다고 단정한다. 그는 자아의 존중으로 나아가 자아를 바깥에서 규제하는 형식적인 것에 대한 비판,전근대적 도덕과 봉건사상에의 비판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리고 전제(專制) 관료주의 비판,절대주의적=비입헌적 정치 비판,국제문제에 대한 관심은 군국주의적 침략주의에 대한 비판 성향을 지닌 것으로 나아가고,국민(國民) 민중(民衆)의 자주적 주체성의 입장에서 서 있다고 생각했다. 역사적 변화발전의 인식은 일본인 고유의 국민성을 부정하고 근대 서구문화의 수입수용을 意義 짓게 하며,사회문제나 사회주의에 대해서도 외래사상이라고 일괄해 傳하는 데 반대하고,취해야 할 점은 취해야 한다는 입장에 섰다. 부인문제와 가족제도에 대해서도 오래된 것을 비판하고,인습적인 자연-예술관을 비판하고,일본의 전통예술에 대한 불만을 명확히 하고 있다. 그는 부정적 중국관中國觀과, 생활력이 약하다고 하는 조선관朝鮮觀을 지녔으며, 열등한 오키나와忠繩라는 사고를 지니고 있었다. 또 기성 불교 교단에 대한 비판은 강하기는 하지만 종교사상에는 능통해 있다. 그런 입장에서 국민사상을 읽었다고 이해하기 쉽다.


【쓰다사학의 의의】

쓰다는 천황제를 합리화하고 근대화해서 황실皇室의 존속을 염원하고 사회주의를 힘으로써 탄압하는 것을 반대한 자유주의적 역사가였다. 그는 마르크시즘에는 반대했으나 사상의 공존을 인식하고 있었다. 일본사상의 고취를 비판하고, 제정일치론祭政一致論을 비판하며, 아시아주의에 비판적이었고 시국 편승을 경계했다. 그 결과 쓰다는 천황 불친정不親政이라는 고발을 받았다. 그의 天皇 不親政을 일본의 전통으로 삼는 견해를 대역大逆 사상으로 간주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고대古代와 상대사上代史에 관한 저서를 「황실의 존엄을 모독한다(皇室ノ尊嚴 冒瀆)」는 이유로 이와나미 시게오[岩波茂雄·임파무웅]와 함께 재판에 회부되었다. 하지만 쓰다는 재판투쟁을 통해 자신은 불경不敬스럽기는커녕,天皇을 경애敬愛하고 있다고 힘써 주장했다. 이런 입장은 전후가 되어서도 전혀 변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쓰다 사학의 본령이다.


〔참고문헌〕 

이에나가 사부로家永三郞 《津田左右吉の思想史的硏究》 1972, 岩波書店. 



Tsuda Sōkichi (津田左右吉 Tsuda Sōkichi ; Gifu prefecture , October 3, 1873 - Musashino , December 4, 1961 ) was a Japanese historian and teacher , a specialist in ancient Japan.


Careers 
Trained at the Tōkyō Specialized School ( Tōkyō senmon gakkō ), ancestor of the Waseda University , Tsuda had to wait the age of 47 before obtaining a professorship at the university. In 1920, he was in fact appointed professor at Waseda University. He soon became one of the leading historians of the Iwanami Editions , founded in 1913.

Tsuda Case 
In 1939, Minoda Muneki and others far-right intellectually launched a campaign against Tsuda for the reason that his "nihilistic" thesis stained the imperial institution. In 1940, Tsuda was blamed, four of his works were banned and he was forced to resign from his post at the university. In 1942, he was sentenced to three months in actual prison and two years with a suspended sentence . His appeal attempt will fail.

Reinstated in his duties at the end of the war, he was elected president of the university in 1946, but refused the post.

Works 
Since his first book in 1901, Tsuda adopted the method that characterizes it, that is, a critical historical analysis of literary texts. He was one of the pioneers of Japan's cultural history in this respect . His best-known works focus on the Annals of Japan ( Nihon shoki ) and the Chronicle of Ancient Facts ( Kojiki ), the mythological founding texts of the imperial institution. Published between 1913 and 1933, they led him to question the idea of ​​a divine origin of the imperial lineage.

Main publications 
In Japanese:

新撰東洋史 (The history of the Orient: new selection), Hōeikan, 1901.
朝鮮歴史地理 (History and geography of Korea), 2 vols., Minami Manshū tetsudō, 1913.
神代史の新しい研究 (New Study on History in the Age of Gods), Nishōdō shoten, 1913.
文学に現われたる我が国民思想の研究 (Study on the thought of our people through literature), 8 vols., Rakuyōdō, 1917-1921.
古事記及び日本書紀の新研究 (New Study of the Chronicle of Ancient Facts and the Annals of Japan ), Rakuyōdō, 1919.
上代日本の社会及び思想 (Society and thought of ancient Japan), Iwanami shoten, 1933.
支那思想と日本 (Chinese thought and Japan), Iwanami shoten, 1937.
日本の神道 (The Way of the Gods of Japan), Iwanami shoten, 1937.
儒教の研究 (Study on Confucianism ), 3 vols., Iwanami shoten, 1950-1956.
日本の皇室 (The Imperial House of Japan), Waseda daigaku shuppanbu, 1952.
歴史学と歴史教育 (The study of history and the teaching of history), Iwanami shoten, 1959.

In English:

An Inquiry into the Japanese Mind as Mirrored in Literature: the flowering period of common people literature , JSPS, 1970.
What is the Oriental Culture? (What is Eastern culture?), Hokuseidō Press, 1955.
Notes 
^ For Japanese biographers born before the Meiji period, the classical conventions of Japanese name day are used , according to which the surname precedes the name. "Tsuda" is the surname.
^ John S. Brownlee, Japanese Historians and the National Myths, 1600-1945: The Age of the Gods and Emperor Jinmu, UBC Press, 1997, p. 186-201.
^ Pierre-François Souyri, Nouvelle Histoire du Japon , Perrin, 2010, p.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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