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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아기부처와 어린 태양신, 그리고 네페르템 by 유성환

by taeshik.kim 2023.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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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은 인도의 고대신화에서부터 등장한다. 불교가 성립되기 이전 고대 인도 브라만교의 신비적 상징주의 가운데 혼돈의 물 밑에 잠자는 영원한 정령 나라야나(Narayana)의 배꼽에 연꽃이 솟아났다는 내용의 신화가 있다.

이로부터 연꽃을 우주 창조와 생성의 의미를 지닌 꽃으로 믿는 세계연화사상(世界蓮華思想)이 나타났다.

세계연화사상은 불교에서 부처의 지혜를 믿는 사람이 서방정토에 왕생할 때 연꽃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연화 화생(蓮華化生)의 의미로 연결되었다.

모든 불보살의 정토를 연꽃 속에 들어 있는 장엄한 세계라는 뜻의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라고 하는 것도 세계연화사상과 깊은 관련이 있다.

《연종보감蓮宗寶鑑》권 8을 보면, “정토에 나서 그 연태(蓮胎)에 들어가 모든 쾌락을 얻는다”라고 했다. 염불로 아미타불의 정토에 왕생하는 사람들은 연꽃 속에서 화생하는데, 이 모습이 어머니의 자궁에서 태어나는 것과 흡사하기 때문에 연태라고 하였다.

한편 석가모니가 마야 부인의 겨드랑이에서 태어나 사방으로 일곱 걸음 걸을 때 그 발자국마다 연꽃이 피어났다고 한다. 이는 바로 연꽃이 화생의 상징물임을 나타낸다.

사찰 벽화나 불단 장식 중에서 동자가 연꽃 위에 앉아 있거나 연밭에서 놀고 있는 모습 역시 연꽃이 화생의 상징임을 묘사한 것이다. 파주 보광사 대웅보전 뒤쪽 판벽(板壁)에 그려진 벽화를 보면, 수십 송이의 만개한 연꽃마다 보살과 동자가 앉아 있는데, 이것은 연화 화생의 상징형으로 표현한 좋은 예이다."

허균, 《사찰장식: 그 빛나는 상징의 세계》, 13-14쪽

불기 2567년 부처님 오신날을 그냥 넘어가기 아쉬워 불교와 관련된 고대 이집트의 흥미로운 내용들을 조금 공유해보고자 합니다.

불교의 대표적 상징 중 하나인 연꽃과 고대 이집트인들이 태양신의 부활과 재생을 나타내는 상징 중 하나로 사용했던 수련(water lily)의 도상적 유사성은 오래 전부터 이집트학자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고대 이집트에는 흰색 수련(학명: Nymhaea lotus)과 청색 수련(학명: Numphaea caerulea)이 자생하고 있었으며 이후 페르시아 지배기에 이들과 유전적으로 아무런 연관이 없는 붉은색/분홍색 연꽃(학명: Nelumbo nucifera)이 도입되었습니다.

따라서 흰색과 청색 수련은 파라오 시기(기원전 3000-332년), 붉은색/분홍색 연꽃은 그리스 지배기(기원전 332-30년) 이후의 조형예술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성각문자 체계에서는 두 종류의 수련 중 보다 신성하다고 여겨졌던 청색 수련(Gardiner Sign List, M9)이 문자화되어 사용되었습니다.

[고대 이집트어로 “수련”은 sšn “세셴”이라고 발음되었는데(아래 그림 참조) 이것이 히브리어 שושנה ”쇼샨”(shoshan)으로 편입되면서 고대 히브리어로는 “백합”을, 현대 히브리어로는 “장미”를 각각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쇼샨나”(Shoshanah)라는 이름이 파생되었는데 이것이 그리스 식 Σουσάννᾱ “수산나”(Sousanna)로 변형되면서 마침내 영미권의 Susan “수전”으로 정착되었습니다.]

수련은 오후가 되면 꽃봉오리를 닫고 수면 아래로 사라졌다가 아침이 되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와 개화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연꽃은 자연스럽게 태양(신)과 태양신이 주도하는 창조와 부활을 상징하게 되었습니다.

《사자의 서》(Book of the Dead) 제15장에는 새롭게 태어난 어린 태양신이 아침에 (태초의 거대한 바다를 상징하는) 물 위로 솟아난 수련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은 묘사되어 있는데 이런 도상은 앞서 인용한 “연태”(蓮胎)의 개념, 즉 “아미타불의 정토에 왕생하는 사람들은 연꽃 속에서 화생하는데, 이 모습이 어머니의 자궁에서 태어나는 것과 흡사하기 때문에 연태라고 하였다”라는 구절, 그리고 연꽃과 동자의 도상, 즉 “사찰 벽화나 불단 장식 중에서 동자가 연꽃 위에 앉아 있거나 연밭에서 놀고 있는 모습 역시 연꽃이 화생의 상징임을 묘사한 것이다”라는 구절과 조응합니다.

실제로 신왕국시대 제19 왕조 람세스2세(Ramesses II: 기원전 1279-1213년)는 자기 자신을 수련 위에 앉아 있는 어린 태양신의 모습으로 형상화한 바 있습니다(아래 사진 참조).




아울러 수련은 재생과 부활의 상징으로 여겨졌는데 이때문에 미라의 장기를 보존하는 데 쓴 카노푸스 단지(Canopic jars)를 수호하는 – 임세티(Imsety) • 하피(Hapy) • 두아무테프(Duamutef) • 케베세누에프(Qebehsenuef) 등 –  “호루스의 네 아들”(Four Sons of Horus)은 언제나 수련 위에 서 있는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또한 《사자의 서》 제81장에는 망자가 수련으로 변신할 수 있는 주문이 수록되어 있는데 여기에 그려진 삽화를 그대로 형상화한 것이 바로 신왕국시대 제18왕조 투탕카멘(Tutankhamun: 기원전 1336-1327년)의 왕묘에서 발견된, 왕의 머리가 수련에서 솟아나는 것을 묘사한 목조 인물상입니다(앞 그림 참조).

그러나 고대 이집트의 만신전(萬神殿: pantheon) 수련과 관련한 가장 독보적인 신은 네페르템(Nefertem)일 것입니다.

네페르템은 대개 머리 위에 청색 수련과 2개 깃털이 달린 관을 쓴 청년의 모습으로 묘사되는데(앞 사진 참조) 도상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신의 가장 대표적인 신격은 태양신에게 향기를 제공해주는 “향기의 신”(Duftgott)입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신들 역시 인간과 마찬가지로 관능적 쾌락을 즐긴다고 생각했는데, 고대 이집트에서 가장 오래된 장례문서인 《피라미드 텍스트》(Pyramid Texts) 266번 주문에서 네페르템은 태양신의 “코에 놓인 수련”(water lily at the nose of the Sun God)으로 묘사됩니다.

이와 같은 신격 때문에 네페르템은 향수(제조)와 관련된 신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또한 신왕국 시대(기원전 1550-1069년) 초기부터 네페르템은 멤피스(Memphis)의 주신인 프타(Ptah)와 그의 아내 세크메트(Sekhmet)의 아들로 여겨지기 시작했습니다. [네페르템과 수련의 도상에 대한 논문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논문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5월 초에 이집트에서 불상이 발견되었다는 언론보고가 있긴 했지만(아래 링크 참조) 이집트가 불교와 그리 깊은 인연이 있는 곳은 아닙니다.

불교가 연기(緣起)에 따른 과정을 중시하는 종교관을 가지고 있다면 고대 이집트는 성취에 따른 결과를 중시하는 종교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수련-연꽃과 관련된 도상은 그 유사성과 전승 가능성을 학문적으로 한번 다루어볼 만큼 재미있는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합장!

관련 링크: http://www.hyunbu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09115

#부처님 #수련 #연꽃 #태양신 #네페르템 #투탕카멘 #람세스_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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