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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아들놈한테 주는 아비의 회한

*** 아래는 January 30, 2013 긁적거린 글이다. 아들놈한테 준다 했는데, 아들놈은 지 애비가 이런 글을 썼는지도 모르고, 공부랑은 일찌감치 담을 쌓았노라 써둔다. 언젠간 볼 날 있지 않겠는가 해서 옮겨둔다. 

 

<自述>

돌이켜 보면 내가 한문에 혹닉惑溺이랍시고 한 시절은 중2 무렵이었다. 줄곧 말했듯이 내가 나고 자란 고향엔 책이라곤 교과서와 전과가 전부였으니 한문 교재라고 있을리 만무한 법. 한데 어찌하여 그 무렵에 고등학교 한문책이 내 손에 들어오게 되었거니와, 한데 어찌하여 거기에서 동파東坡 소식蘇軾의 전적벽부前赤壁賦와 태백太白 이백李白의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를 알게 되었다. 중학생이 뭘 알겠냐만 그걸 번역문으로 읽고는 얼마나 가슴이 벅찼는지 그날로 단숨에 두 작품을 반복하여 읽고는 전체를 암송해버렸다.


지금은 적벽부라 해봐야 임술지추 칠월 기망壬戌之秋七月旣望이란 첫마디로 막하고 말지만 꽤한 분량을 자랑하는 그걸 읽고, 원전으로 외고 해서 몇 번이고 소피 마르쏘인지 피비 캣츠인지 브룩쉴즈인지 암튼 열라 이쁜 얘 사진 거풀을 장식하고 그 뒤에는 초원의 영광 운운한 윌리엄 워즈워스 시가 있는 연습장에 옮겨적은 일이 있다. 



적벽부



중3때다. 교실 뒤 칠판에다 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 자욕양이친부대子欲養而親不待며 양약고구이병良藥苦口忠言逆耳이라 써놓은 적이 있는데 마침 한문교사를 겸한 교감 선생님이 놀라고는 이걸 누가 썼냐 한 기억이 지금도 또렷하다. 


그 무렵 프로야구 출범과 더불어 남학생들 사이에선 야구 바람이 불었고 가요계에선 조용필이라는 아성에 이용이 도전장을 내민 시대라 지집애들 사이에선 용필이가 좋네 이용이 좋네, 개중엔 전영록이 좋네 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시절에 나는 동파를 만났고 태백을 혹닉했다. 이런 흐름은 고교시절에도 그런대로 이어졌다.


하지만 학력고사에 짓눌려 그런 욕망은 짓누를 수밖에 없었으니 그러다가 마음은 늘 그쪽에 있으면서도 몸은 따르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다 한열이가 죽어가는 장면을 뒤로하고 군대에 들어갔다. 미군부대 생활이라 책은 많이 읽었으나 한번 떠난 그 자리로 다시 돌아오긴 힘들었다. 



《夜宴桃李园图卷》(清·丁观鹏)



시간은 그렇게 흘러 복학하고 졸업하고 기자질로 이어지면서 어영부영 한문과 더욱 멀어졌다. 한문은 십대 이래 이십대에 집중해서 공부하고 죽어라 외워야 한다. 하지만 난 그 시절을 허송했다. 서른이 넘어 다시 한적을 대하니 서울땅 처음 밟은 촌놈과 같았다. 이제는 오언고시 하나 외지 못한다. 나는 생업에 쫓겼노라고, 그래서 그 원을 풀지 못했노라 핑계한다. 


내가 한문을 얘기했지만 그것이 어느 것이라도 좋으니 내 다음 세대는 하고 싶은 일, 공부 맘대로 했으면 한다. 


이건 내 아들에게 남기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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