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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아라가야 무덤이 드러낸 유송劉宋시대 중국제 청자사발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1.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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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 가야고분서 5세기 중국 청자 발견…"남조와 교류 흔적"
지름 16㎝·높이 9㎝ 연꽃무늬 그릇…"아라가야 국제성 보여줘"



 

함안 가야고분서 5세기 중국 청자 발견…"남조와 교류 흔적"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아라가야 지배층 집단 무덤으로 알려진 경남 함안 말이산고분군에서 5세기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 청자가 나왔다.가야 중심 권역에서 중국 청자가 발견

m.k-odyssey.com



아라가야 본향인 함안에 말이산고분군이라 일컫는 공동묘지가 있으니, 이는 여러 차례 발굴조사를 통해 아라가야시대 지배층 무덤임이 확실해진다. 

개중 75호분이라 이름한 무덤 하나를 함안군이 경남연구원 역사문화센터에 의뢰해 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5세기 아라가야시대 석실봉토분임이 드러났으니(이를 발굴조사단에서는 돌무지덧널무덤 석곽묘라 했지만, 나는 따를 수 없다.), 시체와 껴묻거리를 매장하는 공간은 길쭉한 네모꼴 돌방으로 만들고, 그 우에다가는 흙으로 봉분을 만들었다. 

그 자세한 내력이야 다른 기회를 엿보아 정리하기로 하고, 어제 그 성과를 발표하면서 배포한 사진들을 중심으로 이번 발굴성과를 시각자료로 정리한다. 

 

 

말이산고분군은 사방 산이 병풍으로 둘러친 함안분지 가운데 길게 뻗은 언덕배기를 따라 그 정상과 기슭에 무덤을 집중으로 조성한 공동묘지라, 이번에 조사한 75호분은 그 중간 기슭에 자리한다.   

 

 

이걸 팠더니 이랬다. 사진은 당연히 봉분 흙을 모조리 걷어낸 상태라, 그 봉분 중앙에다가 길쭉한 돌방을 만들고는 그 안에다가 시신을 묻고 껴묻거리를 넣었다. 

구획석렬이니 분할성토니 암것도 아니다. 무덤을 한꺼번에 포크레인으로 흙으로 쌓을 수는 없으니, 이래저래 똥가리내서 만들었다는 것이다. 암것도 아니다. 저리 할 수밖에 없다. 

 

 

무덤방을 개방하기 전 상태다. 보다시피 길쭉한 돌들로 지붕 혹은 덮개로 삼았다. 저걸 들어내면 내부가 드러난다. 

 

 

돌방은 크게 보아 세 구역으로 나뉜다. 말할 것도 시신은 한가운데 들어갔다. 

중국제 청자는 사진 기준 왼편 구역에서 출토됐다. 한쪽이 깨져 나갔는데, 부러 깨서 넣었는지, 아니면 무덤이 후대 붕괴하면서 일어난 현상인지는 나는 모르겠다. 붕괴하면서 깨져나갔다면 나머지 쪼가리를 찾을 것이다. 

 

이건 앞서 본 청자 출토 구역 세부 사진이다. 다른 지역 토기에 섞인 상태다. 적어도 출토상태로 보면 청자라 해서 특별히 대접한 느낌은 없다!!! 던져 넣은 것이다. 

 

 

저 청자를 쏵 씻어서 보니 이런 상태다. 저런 무늬를 연판문이라 하는데, 뭐 볼 거 없다. 연꽃이 피어 오르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부처님 광배처럼 보이기도 한다. 앙련이라 해서 위로 피어오르는 연꽃이다. 

 

 

천안 용원리 C-1호 석실분 출토품이다. 같은 계열이다. 

 

 

풍납토성 197번지 다-38호 수혈 출토품이라는 것인데 역시 같은 계열이다. 뭐 말 에렵게 해놨는데 풍납토성 중앙부쯤 미래마을지구 한성백제시대 창고 건물터에서 발견된 대옹 꾸러미 중 하나에서 내부에서 발견됐다. 뭘 꼬불치려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중국에서 출토된 같은 기종 청자사발로 이건 남조 유송劉宋 시대 영초 원년(420)에 만든 무덤에서 나왔다. 

 

 

이건 같은 유송시대 원미 2년(474)에 만든 무덤에서 나왔다. 

이런 기종 저런 문양 중국 청자는 쌔고 쌨다. 한반도에서도 쪼가리까지 합치면 적지 않은 데서 나왔다. 

한편 이번 발굴성과와 관련해 문화재청과 함안군에서 배포한 보도자료는 아래와 같다. 

 

함안 말이산 고분에서 5세기 중국제 최고급 연꽃무늬 청자 출토
- 가야와 중국 남조의 국제교류 보여주는 유물로 주목 -


아라가야의 고도 함안에서 아라가야의 위상과 가야의 국제성을 보여주는 유물이 발굴되어 가야사 조사연구와 가야고분군 세계유산등재에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문화재청(청장 김현모)과 함안군(군수 조근제)은 함안 말이산고분군 75호분의 발굴조사(조사기관: 경남연구원 역사문화센터)를 통해 가야문화권에서는 처음으로 5세기 중국 남조에서 제작된 연꽃무늬 청자그릇(中國製 靑磁 蓮瓣文 碗, 중국제 청자 연판문 완)이 발굴되었다고 밝혔다.

가야문화권 내에서 중국제 청자가 발굴된 것은 백제문화권과 가까운 남원 월산리 고분군에서 계수호(鷄首壺)가 발견된 예는 있지만, 가야의 중심권역에서 발굴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계수호: 닭머리 모양을 본뜬 주둥이가 달린 동진 시대 그릇

이번 발굴조사는 말이산 고분군의 체계적 정비와 보존관리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7월부터 가지 능선 끝자락에 있는 75호분을 대상으로 시작되었는데, 지름 20.8m, 높이 3.5m의 봉분을 걷고 11매의 덮개돌을 들어내자 길이 8.24m, 너비 1.55m, 높이 1.91m의 대형돌덧널무덤이 확인되었다.

동서로 긴 사각형 형태의 돌덧널무덤은 가운데 무덤 주인의 공간을 기준으로 서쪽에 유물 부장공간을, 동쪽에는 순장자를 배치하는 말이산 고분군의 전형적인 특징이 잘 나타나 있었다.

연꽃무늬 청자는 서쪽 유물 부장공간에서 무너진 돌덧널무덤의 벽석(얇은 널빤지로 다듬은 장식용 돌)을 들어내자 구경 16.3cm, 높이 8.9cm, 저경 7.9cm 크기의 거의 완형에 가까운 형태로 출토됐다.

* 구경(口徑): 원통 모양으로 된 물건의 아가리의 지름
* 저경(底徑): 그릇의 밑바닥 지름

안쪽 8개, 바깥쪽 8개의 연꽃잎이 겹쳐져 청자를 감싸고 있는 형태로 오목새김과 돋을새김(음각·양각기법)을 모두 사용하여 입체감이 있으며, 이러한 형태는 5세기 중국 유송(劉宋)대 청자 그릇의 대표 형태이다.

중국 강서성(江西省) 홍주요(洪州窯)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중국 출토품과 비교해도 최상품으로 여겨진다.

국내 유사 사례로는 천안 용원리 고분군 C지구 1호 석실분 출토품을 들 수 있다. 중국에서 출토된 남조의 송(宋)대 402년(영초 원년(永初 元年) 출토품과 474년(원미(元微) 2년) 출토품과 비교·분석한 결과 제작 시기는 474년을 전후한 시기인 5세기 중후반 경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함께 돌덧널무덤의 북쪽 장벽에서는 말이산 고분군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인 목가구시설의 흔적도 확인되었고, 큰 칼 2점, 쇠창, 쇠도끼, 금동장식 화살통, 화살 등의 무기류와 말갑옷, 등자(鐙子, 발걸이), 안교(안장), 기꽂이 등의 말갖춤새 일괄, 금동제 허리띠장식, 큰항아리, 그릇받침, 굽다리접시 등 50여 점의 토기류도 함께 출토되었다.

출토된 유물과 유구를 볼 때 무덤은 5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 목가구시설: 돌덧널무덤의 장벽과 단벽에 나무기둥을 걸어 무덤 내부를 보강하는 시설

아라가야 최고지배층 묘역인 함안 말이산 고분군에서 중국 남조(南朝) 최고급 청자가 출토되었다는 사실은 5세기 후반 중국 남조(南朝)와 아라가야가 교류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라국왕 하지가 남제(南齊, 479~502)에 사신을 파견하여 조공하고 보국장군(輔國將軍) 본국왕(本國王)의 작위를 받았다는 󰡔남제서(南齊書)󰡕의 ‘동남이열전(東南夷列傳)’ 기록에서 기존의 대가야를 지칭한 것으로 알려져 있던 ‘가라국왕 하지(加羅國王 荷知)’를 아라가야 왕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될 것으로 본다.

이번 발굴조사의 자세한 성과와 출토유물은 오는 11일과 12일 양일에 걸쳐 하루 2회(오전 10시, 오후 2시)씩 현장에서 공개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현재 발굴조사중인 말이산고분군 남문외1호분과 가야산성으로 알려진 안곡산성 발굴조사 현장도 함께 공개할 예정이다.

현장공개와 관련된 사항에 대한 문의는 함안군 가야사담당(☎055-580-2562) 또는 경남연구원 역사문화센터(☎055-585-5051)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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