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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아산 외암마을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온 선사시대 집터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1.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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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외암마을서 청동기·원삼국시대 주거지 확인
이은중 기자  / 기사승인 : 2021-03-02 09:38:28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편 등도 출토

 

k-odyssey.com/news/newsview.php?ncode=179541640894442

 

아산 외암마을서 청동기·원삼국시대 주거지 확인

(아산=연합뉴스) 이은중 기자 = 충남 아산 외암마을(국가민속문화재 제236호)에서 청동기시대와 원삼국시대 주거지와 수혈 유구 등이 처음으로 확인됐다.아산시는 외암 이간 선생의 생가터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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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앞과 같은 소식이 전해졌으니, 발굴조사가 이뤄진 곳이 다름 아닌 외암마을이라는 점이 눈길을 끌지 아니할까 싶다. 외암마을은 세계유산에 나란히 이름을 올린 안동 하회마을·경주 양동마을과 더불어 현재까지도 조선시대 이래 이른바 전통시대 마을 품격을 유지한 몇 되지 않는 곳 중 하나로 꼽히어니와 

 

그런 데서 발굴조사가 있었다는 점이 뜻밖이고, 더구나 그 아래층에서는 역시나 선사시대 이래 여러 문화층을 포함하는 집터 흔적이 발견됨으로써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 살기 좋은 땅이었음을 명징한다 하겠다. 

 

 

<다음지도에서 찾은 발굴지점>

 

 

카카오맵

당신을 좋은 곳으로 안내 할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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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발굴지점이 외암리 187-1번지 일원 1425㎡이라 하거니와 이곳이 어드메쯤인가 다음지도로 두들겨 보니, 다름 아닌 이곳을 대표하는 중앙부 건재고택 남쪽 대문 동쪽으로 약간 치우친 남쪽 지점 나대지 혹은 빈터로 있는 지점이라, 왜 이곳을 발굴하게 되었는지가 또 궁금하거니와 이르기를 아산시에서 추진하는 외암 이간 선생 생가터 복원정비사업 계획 일환이라 하거니와, 그 기초자료 확보를 위한 요량으로 이번에 이 일대를 파제낀 모양이다. 

 

발굴지점과 건재고택 

 

덧붙여 이 일대 마을을 지금 외암巍巖마을이라 일컫거니와, 오잉? 이 마을 대명사가 될 정도면 이곳이 바로 집성촌이었을 이 마을 큰집, 혹은 이 마을이 있게 간 내력 아닌가 하겠거니와, 외암은 호이며 풀 네임은 이간李柬(1677~1727)이라 공거公擧를 字로 썼고, 당호堂號가 추월헌秋月軒이다.

 

외암리 일대는 예안이씨 절대 나와바리라, 이런 집성촌은 거개 입향조入鄕祖라 해서, 그 마을을 절대 나와바리로 터잡기 시작한 절대 할배가 있기 마련이어니와, 외암이 입향조는 아니며, 그 차지는 그의 5대조인 이사종李嗣宗이다. 입향조를 제끼고 이 마을 이름이 외암이 된 까닭이야 말할 것도 없이 외암이 절대 유명인이 까닭이다.

 

그는 노론 거두 송시열과 송준길한테서 배운 권상하權尙夏한테 수학했으니, 일단 족보가 좋다. 우암이라면 한 수 묵고 들어가는 까닭이다.

 

그가 살던 시절 충청도 촌에서는 지금 보면 말도 안 되는 이상한 논쟁이 벌어졌으니 호락론湖洛論이 그것이라, 그 자세한 개념 정리는 다른 사람 글들을 보아 주되, 암튼 이 논쟁에서 외암은 한원진이 기치를 휘두르는 호론湖論에 맞서 낙론洛論 진영에 서서 열라 투쟁을 전개한다.

 

발굴현장. 이게 아마 건재고택 대문 앞쪽에서 드론을 올린 게 아닌가 한다. 네모꼴이 삼국시대 초기 집자리 같이 보이며 저 둥근 데가 이른바 송국리형 주거지 아닌가 싶다. 사진이 하도 짝아 못 알아묵겠다. 요새 이런 저질 사진 보도자료 배포하는 데 없다. 오른쪽 방형 초가로 보이는 집 앞쪽에 구댕이 같은 흔적이 보이는데 이걸 수혈유구라고 판단한 그거 같다. 

 

지금 와서는 조선시대 당쟁을 무슨 정당정치네 현대판 민주정치 선구가 되네 마네 하는 열렬한 변호가 있지만, 무슨 소리? 지금 한국사회 돌아가는 꼴 보면 천상 이 조선시대 씰데없는 논쟁의 재림이라, 나는 그런 논쟁에서 철학적 사고를 깊거나 넓게 해주었는지는 몰라도 하등 씨잘데기 없는 논쟁이라 본다. 호락론만 해도 웃겨 죽을 판이라, 그래 이 시대를 공부하며 그 시대를 선전하고자 하는 사람들이야 그네 편에 서서 열렬히 옹호하겠지만 사람이나 개돼지나 본성이 같냐 틀리냐가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우쒸 암튼 얘기가 옆길로 샜으니, 다시 잃은 길을 찾아가면, 그렇게 유명하신 분이라 해서 그가 생장한 터전이 빈터로 남은 것을 차마 보지 못한다 해서인지 알 수는 없으나, 이곳에다가 뭔가 생가라 해서 지자체에서 복원을 하고 싶은 모양이나, 복원이라? 하다 못해 그 편린을 잡을 만한 조선시대 그림 자료라도 남았으면 모르지만, 글쎄 그림이 설사 있다 해도 그때 그림이란 게 요즘의 실측도와는 전연 달라서 쓸모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이참에 한번 파 제껴서 외암이 살았을 당시 건물 바닥 흔적이라도 보고 싶었던 모양이나 꽝을 친 모양이다. 

 

다 조사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쯤이면 복원은 아니다. 

 

암튼 이곳을 팠더니 오매불망 기대한 그런 흔적은 온데간데 없고, 엉뚱한 성과만 냈으니, 그 구체하는 발굴조사 결과가 아래 아산시에서 배포한 자료다. 보니 이번 조사는 (재)비전문화유산연구원(원장 정종태)이라는 데서 했다는데, 나로서는 생소한 조사기관이다. 혹 신생 아닌가 싶다. 

 

 

청동기시대-원삼국시대 집자리라 하는데 엥? 어떤 게 청동기고 어떤게 원삼국인가? 참고로 원삼국은 비역사적 몰역사적 용어다. 왼쪽 상단 귀퉁이에 부뚜막으로 생각되는 시설이 보인다. 

 

아산시, 아산 외암마을 내 청동기·원삼국시대 주거지 최초 확인

아산시(시장 오세현)에서 추진하고, (재)비전문화유산연구원(원장 정종태)에서 조사한 아산 외암마을(국가민속문화재 제236호) 내 발굴조사에서 청동기시대와 원삼국시대 주거지, 수혈유구 등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이번 발굴은 아산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외암 이간 선생의 생가터 복원정비사업 계획에 따라 외암리 187-1번지 일원 1425㎡에 대해 실시된 발굴조사 결과다.
 
발굴조사 결과 외암 이간 선생의 생가터와 관련된 건물지는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았지만 청동기시대 주거지 1기, 수혈유구 2기, 원삼국시대 주거지 1기, 굴립주 건물지 2기, 수혈유구 5기, 집석유구 2기, 조선시대 주거지 3기, 석렬 1기, 수혈유구 1기, 시대미상 수혈유구 3기 등 총 21기의 유구가 확인됐고, 이 외에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편 등도 수습됐다. (인용자 주 - 무슨 말인지 독자들이여 알아묵겠니? 건물지는 건물 흔적이라는 뜻이며 주거지는 집터이며, 수혈유구는 구댕이며, 원삼국이란 삼국이 생기기 이전이라는 뜻이지만 얼토당토 않은 용어라 이 시기에 고구려 백제 신라는 다 있었다! 는 점에서 하등 쓸 수 없는 말이며, 굴립주란 주춧돌을 쓰지 않고 그냥 맨바닥에 나무기둥을 박아서 세운 집이란 뜻이고, 집석유구란 돌더미고, 석렬이란 돌로 쌓은 줄이다.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전형적인 송국리형 주거지에 해당되며 출토유물로 보아 대체로 청동기시대 후기 무렵으로 판단된다. 

 

신석기 청동기시대 토기류로 보인다. 벌겋다. 



원삼국시대 주거지와 수혈유구는 유구의 형태 및 상관관계, 경질무문토기와 타날문이 시문된 원저단경호, 발형토기, 호형토기 등의 공반유물로 보아 대체로 3세기 정도에 위치된다. (인용자 주 - 무슨 말인지 독자들이여 알아묵겠니? 수혈유구란 간단히 말해 성격을 가늠하기 힘든 구덩이고, 주거지는 집터이며 유구는 인간활동 흔적, 특히 공간이며 경질무문토기는 상대적으로 높은 온도에서 구워 단단함을 띠면서 이렇다 할 장식이 없는 그릇이며, 타날문이 시문된 원저단경호란 찍어눌러제낀 무늬가 있는 똥궁디는 편평하고 모가지를 짧은 항아리 그릇이며, 발형토기란 속이 깊은 그릇이며, 호형토기란 나도 모르겠지만 아마도 항아리 맹키로 생긴 그릇을 말하는 듯하다.

조선시대 주거지는 3기가 중복된 양상으로 확인됐는데, 평면형태는 방형, 장방형, 타원형으로 모두 다르다. 북벽에 아궁이가 설치됐으며 벽에 기둥구멍이 확인됐다. 유물은 분청사기, 백자편, 자배기편 등이 확인돼 조선전기로 추정된다. 이외에 석렬 1기와 철제 솥을 폐기한 수혈유구도 함께 조사됐다. (인용자 주 - 무슨 말인지 독자들이여 알아묵겠니? 편 편 편 하는 말은 완제품이 아닌 쪼가리란 말이며 석렬이란 돌로 쌓은 줄이며, 폐기란 버림이다. 방형은 네모꼴 장방형은 긴네모꼴 곧 직사각형이며 타원형이란 길쭉이란 뜻이다. 알고 보면 좆도 아니다.

시 관계자는 “이번 조사를 통해 외암 이간 선생의 생가터와 관련된 건물지 흔적은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외암마을이 형성되기 이전 선사 및 역사시대의 취락 원형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고고학적 자료가 확보돼 큰 의미가 있다”며 “더구나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편까지 수습돼 향후 고고학적 조사를 통해 외암마을 및 주변지역 일대에 대한 선사시대 문화상를 밝혀 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말했다.

 

경질무문토기를 비롯한 삼국시대 초기 토기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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