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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구미성리학역사관? 구미? 성리학??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1.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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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라는 데가 나 같은 김천 사람들한테는 참말로 독특한 데라, 보잘것없는 이곳이 산업도시로 우뚝 선 때가 박정희시대라, 특히 나처럼 유서 깊은 도시라 해도 같은 김천이 아니요, 산골깡촌 출신으로 어린시절을 그곳에서 보낸 사람들한테는 그곳은 누나 형들이 국민학교 혹은 중학교 졸업하고서, 혹은 일부가 실제로도 그러했지만, 그것도 아쉬어 중간에 때려치고 돈벌러 간 데가 구미공단이었으니 

 

내가 이미 고등학교에 가야하는 시절에는 유신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박정희 또한 총탄에 가고 없었으니, 더구나 그 총탄 세례를 퍼부은 이가 내가 나온 김천고교 재단인 송설학원 소속 김천중학교 교사를 역임한 전력이 있어 더 그랬겠지만, 나맹키로 헐벗은 사람들은 선택의 기로에 잠시 서게도 한 곳이니 

 

한옥박물관을 지향한 구미성리학역사관 외양 

 

그때 고교 진학 선택권으로 주어진 데 중 한 곳이 금오공고였거니와, 공업입국을 지향한 박정희 유풍은 당시에도 여전해 실제 내가 나온 중학교 출신 중에서는 간혹 금오공고로 가는 이가 없지는 않았으니, 아무튼 구미는 그런 곳이었다. 김천한테는 쨉도 아니되던 구미가 어느날 각중에 커버린 도시가 되어, 김천을 빨아들이는 형국이었으니 

 

이런 일방적인 역전현상이 근자에 들어서야 KTX역이 김천에 들어서고, 더구나 그 인근 광활한 농토지대가 이른바 혁신도시가 되어 개발되니 겨우 균형을 맞추는 시대로 접어들었으니, 감회가 없을 수 없겠다. 

 

암튼 이름도 존재감도 제로에 가까운 구미가 급작스레 성장하면서, 지금은 위상이 예전만은 못하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막강한 지위를 차지하는 이 구미가 김천에는 없는 시설 중 하나가 바로 저것이라, 그래 공립박물관 두고 근자 이런저런 얘기 많이 나오기는 한다만

 

공립박물관은 데코레이션이라, 필수엑세서리 같은 것이라 있으면 골치 아프나, 없으면 알토란 빠진 토란국 비슷하거니와, 암튼 이 공립박물관만 해도 구미에는 더러 있는 모양이라, 개관을 코앞에 두었지만, 논란이 극심한 박정희기념관이 있고, 이미 개관한 데로 바로 저것이 있으니 구미성리학역사관이라 한다. 

 

이런 박물관의 가장 큰 고민이 책거리 전시가 되기 십상이라는 점인데, 이 점에서 고민이 없지는 않았을 것으로 본다. 난 책 전시도 근자 토기 전시기법을 도입해 무지막지 책만 디립다 쌓은 전시를 해 봤으면 한다. 

 

구미성리학역사관??? 애초 이런 박물관을 들었을 적에 구미에 웬 성리학? 했더랬다. 구미라는 이름 혹은 위치가 생소해 그렇지, 이곳이라고 왜 인재가 없었겠는가? 뭐 경상도라 하니깐 꼴통들만 사는 줄 알지만, 이곳은 인재의 공급소였으니, 비탄 퇴계만 있겠는가? 천년왕국 신라의 복판이요, 그런 주류의 전통은 현재까지 계속하는 중이라, 구미라고 왜 학문이 없고 인재가 없겠는가? 기라성 방불하는 인물들이 났고 자랐고 이곳에 터잡았다. 

 

그런 구미가 박정희랑 뗄 수는 없거니와, 그것을 테마로 하는 박물관을 준비 중이어니와, 그래 안다 그것을 반대하는 움직임 역시 만만치 않음을. 다만, 기념이라는 말이 칭송과는 엄연히 다르며, 그런 점에서 나는 구미에서 박정희기념관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건 그렇고 왜 느닷없이 구미성리학역사관인지는 모른다. 이를 애초에 누가 어떤 목적으로 추진했는지 나는 아는 게 없다. 앞으로 알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까닭에 그에 대해서는 내가 뭐라 할 말은 없다. 하도 공업도시로 소문 나는 까닭에 그것을 무화할 목적도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하지만, 꼴통 유학자 산실 중 한 곳이기도 한 엄연한 역사 유산이 있으니, 지역사회를 움직이는 모종의 힘이 이 박물관을 불러왔다고 본다. 

 

이 전시 개막사진을 보고서는 두 가지 상념이 든다. 첫째 애들더러 오지 말란 소린가? 둘째 그럼에도 애들한테 외려 인기가 있을 것이라는 그런 역설을 본다. 문중 할배들, 기왕이면 수염 잔뜩 길러야 한다. 애들이 의외로 갓 쓰고 도폿자루 걸친 할배들을 좋아한다. 왜? 산타할아버지랑 혼동하는 까닭이다. 

 

그런 구미성리학역사관이 개관하고는 첫 번째 기획전으로 금오서원金烏書院을 골랐단다. 한국서원은 대개 그곳이 자리한 곳 이름을 따라 짓거니와 이 금오서원은 말할 것도 없이 구미의 진산격인 금오산을 배경으로 삼을 것이로대, 이 금오산은 실은 김천과 경계를 이루어니와, 그래서 절반은 김천 땅이지만, 이 금오산을 김천에서는 욕심 안낸다. 

 

김천에는 해발 천미터도 안 되는 금오산 아니더래도 해발 천미터를 상회하는 봉우리만 수십개라, 아쉬운 게 없다고 구미에 말해두고자 한다. 


암튼 이러쿠로저러쿠로 개관한 구미성리학역사관이 금오서원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전시를 마련했다 하거니와, 그에 이르기를 "구미가 배출한 대표적인 성리학자인 야은 길재, 점필재 김종직, 신당 정붕, 송당 박영, 여헌 장현광"을 배향한 곳임을 들었으니, 그러고 보니 점필재가 이곳이 터전이었구나. 참고로 저 시대 김천은 매개 조위 나와바리였다. 

 

이 금오서원은 내가 제대로 밟은 적은 없거니와, 마침 작년 12월에 그곳을 구성하는 주축건물 중 정학당正學堂이라는 곳과 상현묘尙賢廟가 보물로 지정되었다고 하니, 이를 뽐내는 자리이기도 한 모양이다. 이름으로만 보면 정학당은 강당인 듯하고, 상현묘는 사당이구만? 

 

폼새 보니 김학수 군이다. 이쪽 문중사학의 절대강자다. 이쪽을 주무대로 학계를 장악한 인물이 몇몇 있는데, 저 김학수도 그렇고 같은 한중연 권오영도 말빨 세고, 같은 기관 퇴직한 안승준은 문중 할배들을 구워 삶아놨다. 



개관에 즈음해 한국학중앙연구원 김학수 교수가 ‘구미지역 유교지식과 한국의 미래‘를 주제로 한 기념특강을 진행했다 하거니와, 아따 이 양반도 걸어다니는 잡학 보학사전이라, 뭐라뭐라 한창을 집안 얘기들을 늘여놨을 것임은 안봐도 비됴라, 이 지역 광목천 걸친 뇐네들 앞에서 현학을 맘껏 자랑했을 것으로 본다.   

어떤 유물들로써 어찌 꾸몄는지는 일간 내가 직접 밟아서 확인키로 하거니와, 이 박물관이 예고한 하반기 특별전이 특히 관심을 끌거니와 노상추盧尙樞, 1746~1829)가 17세인 1762년 이래 죽기 직전 84세인 1829년까지 68년 일생을 기록한 이른바 노상추일기를 주제로 하는 특별전을 계획 중이라 하거니와 이 대목을 기대해도 좋다고 본다. 마침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근자 이를 완역했으니 말이다.  

 

그건 그렇고 이 박물관 생김새를 보니 한옥기와집을 채택했거니와, 아이고야 성리학이라 해서 이리 택한 모양인데, 내가 아는 한 제대로 공부한 사람들은 기와집보다는 초가에서 열라 형설지공했다. 관리에 아마도 애로가 있지 않을까 하는데 지금은 표가 나지 않겠지만 얼마 안 있어 뜯어고치고 외풍 막는다 난리칠 일이 벌써 걱정이다. 

 

문명은 받아들여야 한다. 굳이 한옥을 채택한 이유야 이유를 짐작하지 않음이 아니나, 왜 그 좋은 콘트리트 건물 두고 한옥이란 말인가? 한옥? 누가 또 부채질 했나? 

 

암튼 좋은 전시 기획하고 기획할 박물관에 고생했다는 말을 멀리서나마 전하며 현장 볼 날을 기대하며 김천 백암거사 태식은 序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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