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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화마가 끊이지 않는 내장사, 것도 땡초가 지른 불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1.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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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홀라당 대웅전이 타버린 절을 내장사라 하지만, 이곳이 역사상 유래가 깊은 그 내장사가 아니다. 지금 내장사라 일컫는 곳은 본래 영은사라는 사찰이 있던 곳으로 알려지며, 본래의 내장사는 다른 곳이다. 

 

본래의 내장사와 지금의 내장사 관계는 아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내장사지內藏寺址 항목에서 엿볼 수 있거니와, 이에 이르기를 

 

이건 뭐 부러 낸 불 아니겠는가?

 

전라북도 기념물 제73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백련사白蓮寺는 내장사(內藏寺)라고도 이르며 내장산에 있다.”고 하였다. 내장사는 원래 백련사로 660년(의자왕 20) 환해선사幻海禪師가 세웠다고 하는데 언제부터 백련사로 일컬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근래에 와서 추사 김정희金正喜가 백련사를 벽련사碧蓮寺로 고치고 현판을 썼으나 6·25 때 소실되었다고 한다.

1925년 학명선사鶴鳴禪師가 본전으로 극락보전極樂寶殿을 개축하고 요사를 수축하는 동시에 선원禪院 1동을 세웠으나 1951년 전소되고 말았다. 서편에는 연대를 알 수 없는 탑의 형태를 지닌 부도가 남아 있으며, 후편의 암벽에는 몽련당夢蓮堂 김진민金鎭珉이 쓴 ‘石蘭亭(석란정)’이라는 각자가 있다.

이곳 고내장(古內藏 : 원래의 내장사자리)은 내장산 제일경으로 일컫는 명소로 오봉五峯 김제민金濟民이 춘경을 읊은 천불전의 위치가 현재의 내장사가 아니라, 이곳 고내장에 있었던 내장사로 추측된다.

6·25 이전까지는 문헌상에 등장하는 내장사라는 명칭은 이곳 고내장의 내장사를 가리킨다. 6·25로 고내장이 전소되자, 현재의 내장사에 건물이 새로 지어진 것이며, 현재의 내장사터는 원래 영은사(靈隱寺) 자리였다.

 

오늘의 불

 

요컨대 지금 내장사라 일컫는 사찰은 본래 영은사라는 사찰이 있다가 사라진 자리에 1957년에 들어섰으니, 본래 내장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신생 불교사찰이다. 

 

그렇다면 왜 이곳에 절을 지은 사람은 내장사라는 이름을 썼을까? 간단하다. 그 내력을 빌린 것이다. 이는 마치 서울 성균관대학교가 조선시대 국립대학 성균관에서 이름을 따서 그 내력이 오래됐음을 자랑하려는 심리랑 같다. 

 

그런 신생 내장사도 곡절이 적지 않아서 2012년 10월 31일 오전 2시 10분쯤 하필 대웅전에서 불이 나서 홀라당 태웠다. 이게 아마 화재 원인을 원인불명 혹은 누전 정도로 처리한 것으로 알지만, 왜 불이 났는지 현지에서는 웬만큼 다 안다. 

 

그런 대웅전이 3년 만인 2015년 4월 초파일에 상량 복원하거니와 의아한 대목은 그 복원에 시비와 도비 25억원이 투입됐다는 점이다. 내가 알기로 절에서는 땡전 한푼 안냈을 것이다. 왜 시민과 도민 세금이 들어갔을까? 

 

2012년 불. 방화였을 것이다. 

 

시도비가 들어간다면 들어갈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나는 솔까 왜 공금이 투입되었는지 모르겠다. 문화재라면 문화재 복원을 이유로 대겠지만, 문화재도 아니다. 간단히 말해 사유지 건물을 짓는데 공금이 투입된 것이다. 

 

이는 결국 표심을 얻고자 하는 정치심리에다가 불교계 강압에 말미암은 것이라고밖에 할 수 없거니와, 왜 민간 종교건물 짓는데 공금이 왜 들어가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 그것이 아니라면 혹 국립공원지구에 포함된 것이 지원근거였는지도 모르겠다. 

 

그건 그렇게 이번에 방화범으로 생각되는 유력한 용의자가 잡혔는데 보니 중이란다. 땡중, 왜 그랬는지는 향후 경찰 수사과정에서 어느 정도 베일을 벗을 지는 모르겠지만, 어처구니 없는 이유가 아니었으면 싶다. 

 

참내 왜 사유지 사유건축물에 공금이 들어간단 말인가? 

 

그건 그렇고 타는 꼴을 보니 이건 작정하고 낸 불이다. 신나 잔뜩 뿌리고 지른 듯하다. 

 

내장사

 

그건 그렇고 몇년 전 어떤 용한 풍수쟁이 할배가 한 말이 잊히지 않는다. 이 내장사가 틀림없이 조만간 불이 날 것이라고 예언했으니 말이다. 건물 방향을 잘못 잡아 틀림없이 불나고 만다고 호언장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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