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서 다루고자 하는 아산 읍내동 당간지주가 무엇인지는 앞을 참조하셨으면 하고
이제는 그것이 한 자리를 차지했을 절은 아득히 먼 옛날 사라져 버리고 이곳에 절이 있었음을 증언하는 흔적이라 해 봐야 계우 저 당간지주 하나 꼴랑 남은 데가 어떤 곳인지를 검증하고자
아산시에서 발굴조사계획을 세우고는
(재)가경고고학연구소라는 발굴조사 전문조사기관에다가 의뢰를 한 모양이라, 그 결과치가 오늘 7일 제출되었으니
그 성과로써 조사단은 무엇보다 이 일대에 사찰이 있었음을 확정하는 고고학적 증거를 확보한 사실을 대서 특필하거니와
개중에서도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할 대목은 절에서는 빠질 수 없는 종鐘을 제작한 시설, 곧 주종鑄鐘 시설 흔적이 드러났다는 사실이거니와
아산시 오늘자 보도자료에서는 이 중요성이 심대히 거론되지는 않은 듯해서 이 점을 내가 굳이 헤드라인으로 끄집어 내서 대서특필한다.
이런 시설로 내가 현장을 목도한 곳으로 안성 봉읍사지가 있고, 또 울산 약사동 절터에서도 있어 그 흔적으로 고스란히 떠다가 현재 약사동제방유적전시관에 전시 중이었다고 기억한다.
기타 두어 군데 더 있는 것으로 기억하거니와, 저 주종시설은 그만큼 드문 데다 무엇보다 제련 관련 시설을 우뚝히 증언하는 제1 실물이라는 점에서 주시하고 또 주시해야 한다.
단순히 종 만드는 시설? 이 딴 안이한 접근으로는 그것이 품은 굉대한 역사 콘텐츠를 파낼 수는 없다.
다만 보도자료만으로는 너무나 정보가 부족한 데다, 마침 내가 어버이날을 맞이해서 고향 김천으로 잠시 낙향한 사정을 고려해 좀 더 상세한 정보는 잠시 뜸을 두어 입수해 추후 보강 전달키로 한다.
아울러 국가 보물 아산 읍내동 당간지주가 있다는 사실에 착목해 지난해 이래 올해에 이르기까지 발굴조사 결과
절에서 가장 중요한 메인 빌딩인 금당이 있던 흔적을 비롯한 사찰 관련 건물지 4개 동과 관련 축대시설, 그리고 배수구와 같은 건축물 흔적들을 확인하는 개가를 올렸다.
아울러 통일신라에서 고려 중기에 이르는 시기에 제작한 집선문 기와, 어골문 기와, 관음사觀音寺 명 기와, 도깨비문양 수막새, 연꽃문양 수막새, 시주자 명문기와 등의 유물을 수습했다.
저 관음사 라는 글자 적힘 기와는 혹 이곳에 있던 절 이름을 관음사로 확정할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더욱 세심히 봐야 할 것이다.
금당 터 추정 건물 기초는 정면과 측면 각각 3칸에 좌우 길이 12.1m인 대형 방형 건물로 드러났다. 아울러 이를 둘러싼 축대시설과 4곳 계단을 확인했다.
추정 금당 터 기단은 아주 잘 다음은 석재를 이용해 가구식으로 만들었다.
현재 1~2단 75㎝ 높이가 남아있으나 없어진 상부 갑석을 감안하면 더 높고 웅장했으리라 추정된다고 조사단은 덧붙였다.
주종 관련 시설은 이 금당 터 동쪽에서 발견됐다. 그 흔적으로 보아 이곳에서 주조한 종은 지름 50㎝ 정도다.
당간지주가 위치한 읍내동은 백제 탕정군, 고려 온수군, 조선 온양군 등 백제 이래 고을 관아가 있었거나 그랬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이다.
조선시대 온양군 관아는 지금도 그 인근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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