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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아산 읍내동 당간지주...옆 목화반점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9.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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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아산역 하차와 더불어 곧장 읍내동邑內洞 당간지주幢竿支柱로 날았다. 내비로 11키로..대략 이십분 걸린단다.

앞서 소개한 평촌리 석조석가여래입상과는 가까웠다는 기억이 있고, 십여년전 이 당간지주가 기차역에서는 더 가깝다는 기억이 있어서다.


보물이라 그런지 주변이 쏵 정비되었다.
그땐 바로 곁에 느티나무 같은 게 있지 않았나 하는데 암튼 너무 달라져 이질감이 없진 않다.


안내판도 확 바뀌어 깔끔하긴 하다. (안내판 전문은 아래 참조) 


이 당간지주가 여타 지역 현존하는 동질 당간지주에 견주어 이렇다 할 특징 혹은 차별이 뚜렷하다 할 순 없다.

도지정문화재 정도가 적당치 않을까 하는데 암튼 보물이다.


보다시피 규모가 그리 큰 것도 아니다. 저 분이 168센티로 크다. 

주변에 분명 이 당간지주가 건립되던 시절엔 그 존재 절대기반인 사찰이 제법 큰 규모로 있었을 듯 한데 그와 관련한 정보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 인근에 온주아문溫州衙門과 동헌東軒이 있으니 아마 이 관아터 일대가 절이 있던 곳 아닌가 한다.
(상세한 안내판 설명은 역시 아래에 첨부한다.) 


관아는 1994년 복원이라는데 주초 장대석 등등이 심상치 아니하다.


아문 석주石柱엔 지금도 먹줄이 뚜렷하다. 뭐 남들이야 주초柱礎로 보지만, 나는 그냥 기둥이라 해둔다.  

현재의 건물은 고종 때 것이라 하며 올라가지 말라는데 고양이한테 생선이다.

지나칠 순 없다.


전면으로 산 하나 오도카니 한데 보니 산성이 있을 자리가 아닌가 한다.

왼편으로 대략 4키로를 가면 외암마을이다. 



당간지주와 온주아문 사이에 중국음식점 목화반점이 있어 맛집으로 소문나 온양 아산만이 아니라 인근 당진 예산 등지에서도 손님이 쏟아진다 하거니와, 이곳 역시 지나칠 순 없어 들었더니 다섯시인가 저녁시간도 아닌데도 손님으로 빠글빠글 이름 적어놓고 기다려야 했다.

고추잡채 시켜놓고선 그때서야 비로소 온양민속박물관 신탁근 고문께 연락을 드렸더니..신고도 없이 아산 입성했다 노발대발..

한걸음에 달려오셨는데 쥔장이 신 고문님 알아보곤 서비스 음식 왕창왕창 나와 배터지게 먹었으니,

하루가 지난 지금까지 내 배가 뽈록한 이유가 목화반점 때문이다. 


덧붙이건대 이 일대에는 이 목화반점 말고도 

'옴팡집 추어탕'이 유명하다 하고, 무슨 손두부짓보 저명하다 하는데, 내가 한 끼 식사를 위해 세 탕을 뛸 수는 없어 아쉬움을 남기고 다음을 기약한다. 

그렇다면 이 읍내동 당간지주 일대는 당간지주와 온주아문을 함께 엮은 문화지구로 더욱 변화시킬 만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아산 읍내동 당간지주 牙山邑內洞幢竿支柱

Flagpole Supports in Eupnae-dong, Asan

보물 제537호

아산시 읍내동 255-5


절에 행사가 있을 때, 절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둔다.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개의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아산 읍내동 당간지주는 화강암으로 된 두 개의 돌기둥이 한 쌍을 이루고 있으며, 각각 높이 410cm, 너비 55cm, 두께 39cm이다. 기둥 머리는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으며, 안쪽에는 네모난 홈이 파여져 있어 당간을 단단히 고정시키는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돌기둥 안쪽의 표면은 심하게 닳아 있어 다른 조각이 원래 있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기둥 바깥쪽은 두 모서리를 깎아내어 세로로 줄무늬를 새긴 것 같은 효과를 내고 있다. 또한 기둥 위아래의 굵기에 큰 차이가 없어 전체적으로 세련미를 보인다. 

지주가 자리하고 있는 지금의 위치가 본래의 자리로 여겨지며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The Flagpole Supports in Eupnae-ri, Asan were erected at the entrance to a temple to hold a wooden flagpole that was used to announce special events at the temple. Each flagpole support measures 410 cm in height, 55 cm in width, and 39 cm in thickness. The top of the flagpole support displays a gentle curve. The rectangular hole carved in the inside was used to hold the wooden flagpole.

The inner surface of the flagpole support is heavily worn. There might have been some carvings on its surface. The outer surface of the column displays a longitudinal stripe-like pattern. 

Based on its overall style, it is thought to have been made during the Goryeo Pariod (877-1394). It appears to have always been in this spot.  


온주아문 및 동헌 溫州衙門及東軒

충청남도 유형 문화재 제16호

지정 연월일:1973. 12, 24

시대: 조선

Onjuamun Gate and Magistrate's Office

Chungcheongnam-do Tangible Cultural Heritage No. 16

Designation Date: December 24, 1973

Period: Joseon


온주아문 및 동헌은 조선 시대에 온양군에서 관아로 쓰인 건물이다. 아문은 조선 고종 8년(1871)에 다시 세워졌으며, 동헌은 세워진 후 여러 차례 변형되었다가 1993년에 수리·복원되었다. 

아문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규모로, 문 위에 누각을 만든 문루 건물이다. 기단 위로 1.5m 높이의 주춧돌을 올리고 그 위에 둥근 기둥을 세워 누마루를 설치하였다. 아문의 앞면에는 '온주아문' 이라는 현판이 있는데, 이는 신라 문무왕 3년(663)에 온양군을 '온주' 라고 부른 것에서 유래한 듯하다. 

동헌은 앞면 6칸, 옆면 두 칸 규모로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길게 다듬은 받침돌을 한 벌 쌓아 기단을 마련하고, 주춧돌을 올린 후 그 위에 네모난 기둥을 세웠다. 이 건물은 조선시대에 온양군의 동헌으로 쓰이다가 일제하인 1928년도부터 해방 전까지 주재소로 쓰였다. 

해방 후에는 파출소로 쓰이다가 1986년부터 1988년까지 온양시 온주동사무소로 사용되었다. 


The Onju-amun Gate and Magistrate's Office (idongheon) are the gate building and administrative office, respectively, used by the magistrate of Onyang-gun during the Joseon period. The gate was rebuilt in 1871, with the office building undergoing several renovation and rebuilding works since its foundation until 1993 when it had its last major renovation work to give the building its current appearance. 

The gate is a double-storied structure with three bays on the front and two bays on both sides. The gate has its name Onjuamun engraved on the plaque hanging at the center of the front eaves. The name Onju seems to have originated from the name of Onyang-gun given in 663 when Silla was under the reign of King Munmu.

The Magistrate's Office is a six-bay by two-bay building characterized by single-layer eaves and square columns with stone bases erected on a single-tier foundation lined with ashlars. It continued to be used as a police station even after the Korean Liberation in 1945 and then as the district administrative office of Onju-dong in Onyang-si between 1986 and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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