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에서 전통시대 쌀에 대한 집착은 대단해서,
사무라이들의 경우 녹봉도 쌀로 받지만,
실제로 먹는 밥상도 거의 잡곡을 섞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다.
이 때문에 가난한 사무라이는 밥은 쌀밥을 올리지만 다른 부식이 거의 없어,
비타민 결핍으로 각기병을 앓는 경우가 많았다 한다.
우리나라에 일본 사무라이에 대응하는 계급이라면 결국 사족들인데,
이들은 일본 사무라이보다는 잡곡을 더 먹은 것으로 보이니,
필자가 행한 안정동위원소 연구 결과를 보면,
우리 사족들은 일본 사무라이에 비해 잡곡을 더 먹고, 단백질도 더 섭취한 것으로 확인한 바 있다.
그렇다면 매일 밥상에 올라오는 밥 안에 꽤 많은 잡곡이 섞여 있었을 것이라 보지만,
훙미롭게도 우리나라 사족들 일기에는
서로 간에 선물로 주고 받는 물품 목록을 보면, 쌀이 그야말로 압도적으로 많고,
잡곡을 선물로 주고 받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 쌀이야말로 사족 사이에 서로 주고 받는 물품에 이름을 올릴 수 있겠지만,
조, 기장, 수수 같은 것을 양반들 사이의 선물경제의 물품으로 삼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는 뜻이다.
선물 목록에 없다면 결국 이는 물물교환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것이니,
잡곡은 그 사족 호구 안에서 생산되어 그 안에서 소비되는 것이었거나,
아니면 외부 조달을 하더라도 쌀 처럼 요란하게 선물로 주고 받는 그런 것은 아니었다는 뜻이 되겠다.
우리 사족들의 경우, 일본 사무라이들처럼 쌀 일변도의 곡물 소비는 하지 않았지만,
내가 그래도 양반이면 쌀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은
일본 사무라이들처럼 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방증이 될 것 같다.
*** 편집자주 ***
선물 목록은 그 시대 희귀품이다.
쌀이 단골로 오르는 까닭은 그만큼 귀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쌀을 못 먹었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편집자는 과연 조선 이전 주식이 쌀이었는지 갈수록 의심하면 실제 벼농사가 조선시대 문집이나 일기류에 거의 보이지 않는다.
작황 망쳤다 한탄하는 품목 보면 콩을 비롯한 잡곡이다.
벼농사 망쳤다는 증언 극히 드물다.
'호적, 족보, 일기 이야기 (역사인구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낙방한 시험지는 아무나 보는 조선시대, 폐지 혹은 이면지 활용 (0) | 2026.08.16 |
|---|---|
| 조선시대 자주 먹은 국수 (0) | 2026.08.16 |
| 묵재일기의 특이한 점 : 육류 유통의 경우 (0) | 2026.08.16 |
| 조선시대 일기는 다이어리다 (0) | 2026.08.15 |
| 마누라한테 인분을 먹인 돌팔이 묵재 이문건의 의술 (1) (0) | 2026.08.1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