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젠가도 한 번 쓴 것 같지만 
우리나라 조선시대사는 양반의 시각으로 그 사회를 보고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조선후기 향교에는 놀고 먹는 이들이 많이 들어가 군역을 회피했다던가, 
조선시대 무과 급제를 우습게 본다던가 하는 시각이 그런 것이다. 
이런 것은 전적으로 소과 급제를 대대로 하며 유학은 나면서 부터 이마에 붙이고 태어난 이들, 
대과급제자를 배출하여 복록을 누리던 집안 시각인데 
이런 사람들이 조선에 얼마나 있었을 것 같은가. 
실상은 호적이 만들어지는 향촌 단계에 들어가면
향교에서 놀고 먹었다는 하류 양반 내지는 소위 향촌 중인들
무과급제하여 방목에 올라간 이들
관직 하나 없이 대대로 유학으로 이름을 올리던 이들
이런 사람들도 그 동네에서는 양반 흉내내며 잘만 살았다는 뜻이다. 
호적을 보면 급제 출신도 없이 관직 하나 없이
유학 직역을 세습하는 이들도 부지기수인데
무과 급제하나 나와 방목에 올라가면 그 동네 일약 유지로 올라가는 판이라 
그 다음에 땅 사모으고 노비 축적하면 그게 양반이지 다른 것 없다 할 것이다. 
요약하면, 
전 국민 1프로도 안되는 최상층 양반 시각으로 조선시대를 바라보면
그 시대 사람들 모두 음풍농월하며 과거 급제는 별것 아니고
그래서 무과급제자도 우습게 보는 시각으로 조선을 보지만, 
조선후기 향촌사회의 역동성이라는 것이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어서, 
남아 있는 조선시대 호적 200년치를 어느 한 마을만 잡아 쭉 따라 내려가며 
각 집안의 흥망 성쇠를 보고 있노라면, 
양반의 눈으로 바라본 조선사회라는 게 얼마나 얼토당토 않은 것이었는지 알게 된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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