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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송은의 뮤지엄톡톡

여름에 너무 더울 것 같은 정림사지

by 여송은 2021.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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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 밖에서 보는 정림사지


부산댁 : 너무 더워요. 한 여름에는 들어가지 않고, 여기서 감상해도 좋을 것 같아요.

여송 : ㅋㅋㅋㅋ 지금은 한 여름 아니니깐 들어가요. 이거 보고 시원한 거 마시러 가요.

부산댁 : 네...

어른 입장료 1,500원 / 부여군, 공주시민은 무료이다!


정림사지 오층석탑이 정 가운데 보인다.

정림사지 소나무


부산댁 : 나무 심은지 얼마 안되었나봐요. 나무 키가 작네요. 그런데 왜 소나무를 심었을까요?
절에는 소나무인가요? 잎이 좀 넓은 나무면 그늘이 생기지 않을까요? ㅋㅋㅋ 아니면 벚꽃나무!

여송 : 좋네요. 글쎄요? 그런데 사찰 올라가는 길 보면 소나무가 많았던 것 같아요. 아닌가 우리나라 산에 그냥 소나무가 많은 건가?




정림사지오층석탑 사진을 찍는 부산댁과 모르는 가족들


부산댁 : 아 탑 보니 생각나네요. 저 학부 때 답사와서 탑 앞에서 단체로 사진 찍었어요.

여송 : 학부에서 답사 오면 필수코스였겠죠. 탑 앞에서 소정방 이야기하고, 자료조사 한거 발표하고. ㅋㅋㅋ 부소산성도 갔었나요?

부산댁 : 아마도요? ㅋㅋ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여송 :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보니깐 백제의 기운이 느껴지나요? 신라인?

부산댁 : 네. 그런데 저 가야인이거든요?ㅋㅋ 저는 정림사지 오층석탑 좋아요. 뭔가 딱딱 반듯하게 쌓은 느낌이 좋아요. 뭔가 군더더기 없이.

여송 : 그렇게 말하니깐, 선생님 개인적 취향이 느껴지네요. 화려하고 군더더기 장식있는 거 별로 안좋아하잖아요. 탑을 볼 때도 그 취향이 반영 되었네요.

부산댁 : 선생님은요?

여송 : 저는 사실 탑을 보고 ‘오...’ 하고 감탄한 적이 없어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제가 탑의 의미가 아니라 미적인 기준으로만 보려고 해서 그런 걸 수도 있고요.


여송 : 탑 배경으로 사진 찍어 주세요!

부산댁 : 넵! ....아 왜그러는 거야...


부산댁 : 저기는 뭐죠?

여송 : 불상이 있어요. 가봅시다.

부여 정림사지 석조여래좌상


부산댁 : 힉? 매우 크네요? 갓도 쓰고 있네요. 고려시대 불상인가봐요.

여송 : 넵. 그런데 고려시대때 정림사에서 이 불상을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어요. 선생님 불교 전공...

부산댁 : 아니거든요? ㅋㅋㅋㅋ 저 불구 전공이거든요.

여송 : 뭐 그거나 그거나 아닌가요?ㅋㅋ

부산댁 : 다르거든요? ㅋㅋ

여송 : 넵넵 ㅋㅋ




부산댁 : 비 올것 같아요.

여송 : 그러게요, 후텁지근 하네요. 정림사지박물관 문 닫아서 아쉬워요. 아니 코로나 때문에 문 닫는 게 한 편으로는 이해도 가고 한 편으로는 핑계 아닌가 생각도 들어요. 인원수 제한해서 들어오게 하던가... 아 몰라요.

부산댁 : 그러게요? 사정이 있겠죠.

여송 : 넵. 하지만 저는 예전에 봤어요. 또 보고 싶었을 뿐. ㅋㅋㅋ

정림사지박물관 전시실 안내도


여송 : 이제 집에 가입시더~~~

부산댁 : 담에 우리 춘천가요. 국립춘천박물관 전시 보고 싶어요.

여송 : 오? 좋아요. 저도 못 가봤어요. 자 이제 백제의 기운을 듬뿍 받았으니 집에 가자구요!

부산댁 : 넵넵!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안내판


정림사지 복원도


부여 정림사지 석조여래좌상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에 나와 있는 내용으로 설명은 대신하겠다.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扶餘定林寺址五層石塔)
(링크 삽입)

부여 정림사터에 세워져 있는 석탑으로, 좁고 낮은 1단의 기단(基壇)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다. 신라와의 연합군으로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한 기념탑’이라는 뜻의 글귀를 이 탑에 남겨놓아, 한때는 ‘평제탑’이라고 잘못 불리어지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다.

기단은 각 면의 가운데와 모서리에 기둥돌을 끼워 놓았고, 탑신부의 각 층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을 세워놓았는데, 위아래가 좁고 가운데를 볼록하게 표현하는 목조건물의 배흘림기법을 이용하였다. 얇고 넓은 지붕돌은 처마의 네 귀퉁이에서 부드럽게 들려져 단아한 자태를 보여준다.

좁고 얕은 1단의 기단과 배흘림기법의 기둥표현, 얇고 넓은 지붕돌의 형태 등은 목조건물의 형식을 충실히 이행하면서도 단순한 모방이 아닌 세련되고 창의적인 조형을 보여주며, 전체의 형태가 매우 장중하고 아름답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과 함께 2기만 남아있는 백제시대의 석탑이라는 점에서도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며, 세련되고 정제된 조형미를 통해 격조높은 기품을 풍기고 있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부여 정림사지 석조여래좌상 (扶餘 定林寺址 石造如來坐像) 보물 제108호
(링크삽입)

충청남도 부여의 정림사지에 남아 있는 석조불상으로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국보 제9호)와 남북으로 마주보고 있다. 정림사는 6세기 중엽에 처음 창건되어 백제 멸망 때까지 번창하였던 사찰로 고려시대에 다시 번창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석불상은 고려 때의 번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의 머리와 보관은 제작 당시의 것이 아니라, 후대에 다시 만들어 얹은 것으로 보인다. 신체는 극심한 파괴와 마멸로 형체만 겨우 남아 있어 세부적인 양식과 수법을 알아보기 어렵지만, 어깨가 밋밋하게 내려와 왜소한 몸집을 보여준다. 좁아진 어깨와 가슴으로 올라간 왼손의 표현으로 보아 왼손 검지 손가락을 오른손으로 감싸쥔 비로자나불을 형상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는 상대·중대·하대로 이루어진 8각으로 불상보다 공들여 만든 흔적이 역력하다. 상대는 연꽃이 활작 핀 모양이며, 중대의 8각 받침돌은 각 면에 큼직한 눈모양을 새겼다. 하대에는 연꽃이 엎어진 모양과 안상을 3중으로 중첩되게 표현했다.

현재 불상이 자리잡고 있는 위치가 백제시대 정림사지의 강당 자리로 이곳에서 발견된 명문기와를 통해 이 작품은 고려시대에 절을 고쳐 지을때 세운 본존불로 추정된다.


정림사지 위치
충남 부여군 부여읍 정림로 83 (부여읍 동남리)

정림사지

충남 부여군 부여읍 정림로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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