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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여전한 지배층 중심 역사학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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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층 중심의 역사학 해체를 부르짖고 나선 신역사학.

유감스럽게도 그들 역시 지배층 중심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혁명을 주도하거나 동참한 1프로만의 역사.

그 역사에서 99프로는 여전히 몰명화沒名化했다.

민중이라는 이름으로
농민이라는 이름으로
학생이라는 이름으로
지식인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역사는 개별명사 대 집합명사의 싸움이었다.

이런 시도, 내 보기엔 그 어떤 역사학도도 시도하지 못했다.

 



아날?

긴즈버그?

이 정도가 저에 반란했다.

학교라고는 소학교 문전에서 나무 장사한 일이 고작이고

집나간 아들이 일년만에 부모님 전상서로 시작하는 편지를 보내와도 까막눈이라 읽을 수도 없었으며

혁명에 동참하지도 않았고

광복 때는 태극기도 흔들지 않았으며, 아니 태극기가 무엇인 줄도 몰랐으며

박정희라면 삼신할머니로 아는 내 아버지 내 엄마 역사의 전면에 내세우고 싶다.

지금껏 한국 근대사를 구축한 독립신문 황성신문 독립선언서 백범일기는 이제는 버려야 한다.

그 자리에 혈의누를 대치하고 무정 사랑을 등치하며 봄봄을 심고 백치아다다를 깨워야 한다.

누누이 말했지만 역사를 지배 피지배 계급이 길항하는 과정에 놓는 구도 나는 반대한다.

이런 구도는 근현대사에서 두더러진데 식민기 기술을 보면 기가 찬다.

억압과 저항만 있을 뿐이요 이런 구도에서는 항용 권력과 지배계층이라는 식민당국,

그리고 그에 부화한 조선인 일부는 친일파란 이름으로 항용 악의 축이 될 뿐이요

기타는 맹렬한 독립운동가 아니면 선한 민중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는 인간을 바보로 만들 뿐이니 특히 민중으로 뭉뚱그린 계층은 겨우 밟으면 꿈틀하는 굼뱅이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생각하는 민중은 인류사상 단 한 번도 존재한 적 없는 허상이다.

나는 식민지시대 이후 한국사는 욕망이 들끓는 용광로로 그려야 한다고 본다.

강만길 이만열 서중석의 역사는 끝장나야 한다.

신흥 도덕주의자 박노자도 사람을 등신으로 만들었다.

조선반도가 대일본제국의 일원이었던 시절에 그 시대 사람들이지 외려 지금의 우리보다 세계를 보는 안목이 넖을 수도 있다는 점을 다들 용납을 아니한다.

일제는 강압이고 폭거라는 상식이 머리에 박혔는데 역사가 보이겠는가?

내 항용 얘기하지만 그땐 가출했다하면 만주 중국 일본이 기본이다.

지금 중국 동북지역 조선족 뿌리에 왜 경상도가 그리 많은 줄 아는가?

거긴 같은 대일본제국 영토였다는 데 해답이 있다.

(2013.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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