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종종 나오는 이야기 중에 16-17세기에 우리나라는
노비가 너무 너무 많았던 나라로 양반집 농사는 수백 명에 달하는 노비 사역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종종 온라인에 보이며
이와 관련하여 방송도 탔던 것이 바로 "추노"로 아는데,
사실 우리나라 16-17세기 상황이 분재기나 일기 등 전적이 소개 되면서 보다 잘 알려진 덕분도 있지만
이 시대를 우리가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왕조실록 등에는 이런 이야기 충분히 적혀있지도 않고
무엇보다 집집마다 전하는 족보에는 집집마다 양반들 후손이었던 고로
16-17세기에 이렇게 노비가 많았던 것은 의외의 사실로 받아들여진 측면도 있다고 본다.
그런데-.
기록으로서 족보는 별로 믿을 만하지 않다는 이야기도 했거니와
지금 집집마다 전하는 대동보에는 서얼도 기술이 되어 있지 않아,
대동보는 지손 서얼 차별없는 문자 그대로 대동보일뿐,
16-18세기 조선 향촌사회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거울은 되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이 시기에 200여년 호적이 남아 있는 동네들이 우리나라에는 있는데
200여년 동안 (17-19세기) 특정 지역 호적을 보면,
노비의 존재는 물론 지손과 서얼 여부까지도 직역 등으로 거의 구별 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19세기에 들어오면 집집마다 직역이 유학이 되어 이런 것도 구별이 불가능하지만
17, 18세기만 해도 직역으로 서얼의 구분이 호적에서 가능했던 까닭이다.
아마 조선시대 수백 년 호적이 마을마다 남아 있었다면 굳이 분재기 등을 들지 않더라도
양반 집 농사는 노비 사역으로 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는 바,
17세기 호적에는 호주인 양반 아래에 노비 수십 명이 같은 호에 편제되어 있는 경우가 부지기수인 까닭이다.
지금은 이렇게 200여년 만이라도 같은 고을 호적이 연속적으로 남아 있는 곳은
전국적으로 손가락 꼽는 정도에 불과하니
19세기 평민 노비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이 양반 후손이 되고자 한 우리 조상들 꿈은
조선왕조 망국과 호적의 대거 망실과 함께 마침내 완전범죄(?)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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