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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 & 漢文&漢文法

열다섯에 군대 끌려갔다 여든에 돌아오니

by taeshik.kim 2018.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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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13 09:59:40

 

전쟁이란 그때나 지금이나 기댈 곳 없는 이른바 서민이나 민중에게는 더욱 고통스런 일. 있는 놈은 장교로 가거나 빠지고 없는 놈들만 졸따구로 끌려가 고생 열라게 하는 법이다. 있는 놈들이며 장교들이야 전쟁은 출세를 위한 절호의 찬스지만, 힘없고 백 없는 서민들은 그럴 기회도 거의 없을뿐더러, 설혹 그런 기회를 발휘한다고 해서 그것이 눈에 쉽게 뛸 리 만무했다. 


중국사에서도 한국사에서도 대체로 군대 징집 기간은 3년이었다. 하지만 말이 3년이지 이게 제대로 지켜진 경우는 없다.

 

고대 중국, 특히 한대(漢代)는 북방 오랑캐 흉노(匈奴)에 내내 골머리를 앓았다. 강온 양면 전략을 끊임없이 구사했으나, 늘 흉노에 시달렸다. 호로(胡虜) 새끼라는 말은 이미 전한(前漢) 시대에 등장하는데 흉노를 경멸하는 말이었다. 얼마나 흉노가 두려웠으면 이런 말이 생겼겠는가?

 

후한대가 되면 흉노가 쇠퇴하는 대신에 그 자리를 동호(東胡) 한 갈래로 추정되는 선비(鮮卑)라는 강력한 또 다른 북방 호로가 등장해 중국을 위협한다. 결국 선비로 대표되는 이민족들은 급기야 서기 313년에는 서진(西晉) 왕조를 멸하고 황하 유역 중국 북방 지역을 완전히 장악하는 위진남북조시대를 개막한다.

 

사정이 이러니 3년 기한으로 징집된 이들은 기한 내 제대는커녕 아예 평생을 군대에 묶이기도 했다. 아래에 소개하는 시는 그런 서민 신세를 절탄하는 노래다. 열다섯에 군대에 끌려갔다가 80세에 겨우 징집이 해제되어 고향에 돌아왔더니만 집은 쫄딱 망하고 토끼새끼, 꿩들 차지가 되고, 폐허가 된 옛 집터에 무성하게 난 잡초와 들곡식으로 밥과 국을 지으니 눈물이 흐른다는 저 절망. 물론 이는 과장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과장에서 서민의 애환을 본다. 

 

열다섯에 군대 끌려갔다         十五從軍征

여든 되어 집에 돌아와           八十始得歸

길에서 고향사람 만나            道逢鄕里人

집엔 누가 있나 했더니           家中有阿誰

저-쪽이 자네 집이라네           遙看是君家

송백은 무덤처럼 빼곡하고      松栢冢纍纍

토끼는 개구멍 드나들고         兎從狗竇入

꿩은 들보에서 날아오르는데   雉從梁上飛

뜰에는 들곡식만                    中庭生旅穀

우물 위엔 돌아욱 자랐네        井上生旅葵

곡식 찧어 밥 짓고                  舂穀持作飯

아욱 뜯어 국 끓이니               採葵持作羹

국과 밥은 한꺼번에 되는데     羹飯一時熟

누구에게 줘야 할지 모르겠네  不知飴阿誰

문을 나서 동쪽을 바라보니     出門東向看

눈물 흘러 옷깃만 적시네        淚落沾我衣

 

송대(宋代) 곽무천(郭茂)이 집(輯)한 악부시집(樂府詩集. 전100권) 중 권(卷) 25 횡취곡사(橫吹曲辭) 중 하나로 수록된 고시(古詩)로 ‘열다섯에 군대에 끌려갔다가’(十五從軍征)라는 제목으로 실린 노래다. 이 시에 대해 악부잡록은 고금악록(古今樂?)이라는 문헌을 인용해 “十五從軍征 이하는 고시(古詩)이다”(古今樂?曰十五從軍征以下是古詩)라고 한다.


저자와 정확한 편찬시기는 알 수 없다. 다만, 한대(漢代)라는 심증을 강하게 주는데 정중호(丁仲祜. 874∼1952)가 집록(輯錄)한 ≪전한시(全漢詩)≫에서는 이를 한대 작품으로 보아 이곳 권제3에 수록했다. 한데 이 전한시에 수록된 다음 시는 일부 구절에서 악부시집의 그것과 약간 다르다. 

 

十五從軍征

八十始得歸

道逢鄕里人

家中有阿誰

遙望是君家

松栢冢纍纍

兎從狗竇入

雉從梁上飛

中庭生旅穀

井上生旅葵

烹穀持作飯

採葵持作?

羹飯一時熟

不知餌阿誰

出門東向看

淚落沾我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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