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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열렬한 중앙집권에의 찬양가로 흐른 고려거란전쟁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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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 혹은 고려거란전쟁이라는 종래에는 좀처럼 접하기 힘든 소재를 들고 나왔다는 점에서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은 일단 후한 점수를 줘야 한다고 본다.

기타 장점이 많거니와, 이런 기회를 빌려 나 또한 어줍잖은 글나부랭이라도 긁어댈 수 있으니 더 고맙기 짝이 없다. 

그렇다고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없지 아니해서, 단언하고 전제하지만, 나는 작가적 상상력만큼은 최대한 존중하되, 이 드라마를 관통하는 문제적 시각도 적지는 아니해서 개중에서도 한두 가지만큼은 지적하고 싶다. 

이 드라마는 시종일관해서 유쾌통쾌상쾌를 지향하는 사극이라, 그 유쾌 통쾌 상쾌는 거란이라는 당대의 거인하고 맞붙어서도 고려라는 작은 나라가 굴하지 아니하고 궁극으로는 승리를 쟁취한 이야기를 강감찬과 현종을 중심으로 시종일관해서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기존 공중파 방송 사극이 그랬듯이 절저하게 내셔널리즘에 기반한다. 

내셔널리즘은 간단히 말해 결국 우월주의라, 그 우월은 필연적으로 그 희생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는 거란이라는 거인을 그 위대한 제단에 바치고자 한다.

거란은 우리네 유쾌통쾌상쾌를 정당화하는 도구일 수는 없다. 그것이 거란이라 해서, 혹은 흉노라 해서, 혹은 수나라 당나라라 해서 그런 시각으로 그네들을 밥상에 올려 반찬거리로 삼을 수는 없다. 

나아가 두 번째로 이 드라마는 저와 같은 무수한 사극이 그랬듯이 철저히 중앙집권을 찬양하는 방향으로 흐른다.

이 중앙집권은 결국 지방을 희생으로 삼는데, 그런 지방은 시종일관 강한 국가 강한 왕권에 저항하는 악의 축으로 설정한다.

이 드라마 역시 이에 아주 철저해서 시종일관 중앙으로 향하는 권력을 찬양한다. 

이 흐름이 꼭 누구에게서 비롯한다 단언하기는 힘들고, 또 작금 역사학계 주류적인 시각이라고도 할 수 있으니, 그런 마당에 드라마 혹은 그 작가한테서 그에서의 탈피를 요구하는 일은 무리라고도 할 수 있지만, 드라마 역시 사관을 지향하는 또 다른 실록이라는 점에서 그것을 시종 굳건히 고수한 대목은 비판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 드라마는 시종일관 현종이라는 현명한 군주, 그런 군주가 이끌어내고자 하는 강력한 왕권에 기반한 강력한 국가를 꿈꾸는 반대편에다 그에 대항하는 사악한 존재로 호족 혹은 호장이라는 반대편을 설정한다.

이는 결국 이기백 역사학의 고질을 답습한 셈인데 이기백 사학은 열렬한 중앙집권 독재찬양이다. 

이걸 깨부셔야 했지만, 그에 실패했다. 

왜 모름지기 한국역사학에서는 분열은 나쁜 것이며 그것을 지향하는 지방호족은 또 더 나쁜 놈이어야 하고, 국민독재에 기반하고 끊임없는 갈채를 유발하는 독재군주가 강력한 국가라는 이상형과 맞물려 찬양받아야 하는가? 

중앙을 향하는 권력은 해체 분배되어야 한다.

어디로? 民으로 方으로 해체 분배되어야 한다.

그것이 시대정신에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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