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usone 잡지..누구나 투고 가능하다.
소위 말하는 지식인 사회를 중심으로, 한국 혹은 한국문화가 국제사회에서 그에 걸맞는 대접을 받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로 흔히 영어 번역 문제를 들기도 한다. 이들에 의하면, 국내 학자들의 연구가 영어로 번역되고, 제대로 소개되지 않아서 국제사회가 한국과 한국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는 길의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목소리가 가장 자주 나오는 데 중 하나가 역사학이다. 특히 동북공정이니 독도영유권 문제니 하는 역사 관련 국제분쟁이 나올 적마다, 이 분야 직업적 학문종사자들은 국내 학자들의 연구가 제대로 국제사회에 번역되고 소개되었더라면, 이런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거나, 혹은 그런 논쟁이 제기되어도 우리가 국제사회를 향해 제목소리를 내는 데 훨씬 수월할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리기도 한다. 비단 역사학이 아니라 해도, 번역이 태부족이라는 데는 국내 지식인사회가 널리 공유하는 문제의식이라는 점에서는 이렇다 할 이의 제기를 하기 힘들다.
이런 목소리는 국가에 의한 의욕적인 영역 혹은 다른 외국어 번역본 출간을 통해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내기 시작한 문학계와 대비할 때, 어쩌면 타당성을 지니는지도 모른다. 한국문학 작품은 충분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다른 분야에 견주어 외국어로 번역이 많이 이뤄졌으며, 지금도 그러는 추세다. 저명한 소설가 한승원 딸로서 그 자신 촉망받는 소설가 한강은 근자 맨부커상을 수상했거니와, 그 권위에서는 어쩌면 노벨문학상과 맞먹을 이 상을 수상한 가장 발본적인 이유가 영어 번역에 있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영어로 번역되었기에 그 힘을 바탕으로 그의 작품이 외국에 널리 소개된 것이다. 지금 당장 내가 그의 작품 번역에 정부차원 지원이 있었는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문학 작품은 문화체육관광부를 중심으로 지속적인 외국어 번역이 이뤄지는 형편이며, 이를 기반으로 해서 한국문학이 세계에 알려지는 결정적인 통로가 되고 있다.
이에 비견해서, 혹은 그에 발맞추어 다른 여타 학문 분야도 국내 연구성과가 영어 같은 외국어로 지속적으로, 그리고 광범위하게 번역되고 소개되어야 한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것이 역사왜곡도 막을 수 있고, 나아가 그것이 한국문화를 좀 더 객관적인 시각에서 세계에 소개할 창구가 된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실제 내가 만난 이 분야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리 말한다. 그렇다면 이런 주장은 얼마나 타당할까? 다음과 같은 점에서 나는 이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영문학술잡지 KOREA JOURNAL..유네스코한국위원회서 발간하다 근자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 운영주체가 넘어갔다.
첫째, 직업적 학문분야 종사자들이 그네들 연구성과를 국제무대에 알릴 통로는 엄청나게 많다. 무수한 통로가 있다. 관련 각종 외국어 학술잡지는 널려 있다. 마음만 먹으면, 이런 무수한 잡지 어디에도 국내 직업적 학문종사자들은 투고가 가능하다. 단, 해당 외국어로 작성되어야 한다. 지금은 영어가 국제사회 공용어이므로, 영어라면 어디에건 투고하는 데는 애로가 전연 없다. 따라서 이를 고려할 때 국내 학계의 연구성과가 국제사회에 알려지지 않는 까닭은 영어로 번역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원인이 도사린다는 점을 단적으로 안다. 영어로 쓰면 된다. 본인이 영어가 되지 않으면, 영어로 전문 번역해주는 기관이나 개인한테 맡기면 된다. 그것을 하지 않을 뿐이다. 얼마든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무대에 내 연구를 알릴 기회가 존재하는 데도 그것을 이용하지 않을 뿐이다. 왜 그것을 불특정 국민다수한테 부담을 떠넘겨 꼭 국민세금을 쏟아부어 영어로 번역해야 한다는 말인가?
둘째, 영어로 번역이 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영어로 번역되어도 국제사회 학술잡지가 요구하는 기준을 맞추지 못하는 글이 대부분이다. 더 간단히 말한다. 국내 학술연구성과가 영어로 번역되지 않아 제대로 소개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수준 미달인 까닭에 소개되지 않는 것 뿐이다. 좋은 논문이 영어와 같은 외국어로 작성되면 더욱 좋겠지만, 꼭 한국어 논문이라 해서, 알려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런 일이 가뭄에 콩나듯 하다만, 반드시 언어 문제만은 아닌 것이다. 논문다운 논문, 글다운 글, 국제사회에 내놓아 부끄럼이 없는 글이 없는 까닭이 왜 엉뚱한 영어 번역에다 분풀이를 한단 말인가? 내 보기엔 지금 이 순간에도 쏟아져 나오는 우리 지식인 사회 논문을 보면 100편 중 99편은 쓰레기다. 쓰레기 중에서도 재활용조차 불가능한 쓰레기다. 깡통이야, 비닐이야, 유리병이야, 철물이야, 청동이야 녹여서 혹은 갈아서 재활용이나 한다지만, 이 논문들은 그조차 불가능해 쓰레기 매립장에 묻고는 영원히 밀봉해야 한다.
정리한다. 국내 학술계 연구성과가 외국에 제대로 소개되지 않는 까닭은 그것을 발표할 매체가 없거나 부족하기 때문도 아니요, 더구나 영어로 제대로 번역되지 않아서도 아니니, 오직 그 원인은 국제사회에도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논문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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