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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창덕궁이 자연과의 조화?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8.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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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궁


창덕궁을 선전하는 문구 중에 빠지지 않는 말이 자연과의 조화다. 이 논리를 유네스코까지 들이밀어 그것이 세계유산에까지 등재되는 큰 발판이 되었다. 예서 자연은 노자(老子)의 그것보다 양놈들이 말하는 nature에 가깝다고 나는 본다. 그 영문 등재신청서와 그 영문 등재목록을 자세히 살핀 것은 아니로대 틀림없이 그리 되어 있을 것으로 본다. 


한데 예서 주의할 것은 자연과의 조화 실체가 무엇이냐는 거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궁 전체와 그것을 구성하는 개별 건축물들의 레이아웃 혹은 디자인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것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에서 무엇과 다른가 하는 고민을 유발한다. 


첫째, 동시대 혹은 같은 한반도 문화권에서 여타 궁과 다르다는 뜻이니 예컨대 조선왕조 법궁인 경복궁과 다르다고 한다. 둘째,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 궁과도 다르다고 한다. 북경의 자금성이 비교대상의 대표주자일 것이다. 실제 이들과 좀, 아니 왕청나게 다르다. 이들 비교대상은 무엇보다 평지에 위치하며 그런 까닭에 궁이라면 모름지기 이러해야 한다는 그랜드 디자인을 만족할 호조건을 구비한다. 그 그랜드 디자인은 남북 중심축을 삼되 그것을 동서로 반토막 내고 그 전면은 각종 국가의례 공간으로 삼되 그 북쪽은 내리(內裏)라 해서 왕의 사적인 생활공간으로 구성한다. 그 중심은 전면 의례 공간 정중앙 정북쪽을 차지하는 정전이니 경복궁은 근정전이 그것이니 이는 지상에 강림한 북극성이다.


이에 견주어 보면 창덕궁은 개판 일분전이라, 남북 중심축이 되지 못하고 꾸불꾸불 난장판이다. 한데 이 난장을 요새는 일러 포장해 가로대 자연과의 조화라 하니, 이는 새빨간 사기다. 창덕궁이 왜 저 모양인가? 


창덕궁 인정전



첫째, 그 전면 종묘에서 빚어진 변칙 난공사의 여파에 지나지 않는다. 창덕궁을 제대로 디자인에 맞추어 지으려면 전면 종묘를 까부셔야 한다. 하지만 종묘를 침범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그것을 피하다 보니 뱀 몸뚱아리처럼 휘어졌을 뿐이다. 둘째, 공사비 문제가 무엇보다 컸다. 창덕궁이 동시대 혹은 시대와 공간을 달리하는 다른 동아시아 여타 문화권 왕궁과 디자인이 다른 듯하지만, 이도 피상적인 관찰에 지나지 않아, 실제 그를 살피면 동아시아 그랜드 디자인과 한 치도 어긋남이 없다. 앞에다가 정전을 세우고 뒤에다가 제왕의 일상적 거주공간을 배치하는 구조는 한 치도 다르지 않다. 다만 직선을 맞추지 못해 어긋나 있을 뿐이니, 이 어긋남이 자연과의 조화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자연이 그 모양 그 꼴로 생겨먹었기 때문이다. 


자연과의 조화를 논할 때 항용 풍수라는 말을 동원한다. 풍수설에 따라, 지금과 같은 창덕궁 배치가 가능했다고 한다. 실제 실록을 비롯한 각종 기록을 보면 왕궁을 택지(擇地)할 적에 풍수를 고려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것이 어찌 비단 창덕궁만의 문제이겠으며, 모름지기 한반도 문화권만의 문제이겠는가? 간단하다. 창덕궁이 지금 저 모양이 된 까닭은 그 일대 지형이 그래 돼 있었기 때문이지, 무슨 자연과의 조화옹을 구하는 그런 작업에서 기인한 것은 결코 아니다. 


경복궁 향원정


저 땅에다가 궁궐은 저리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전면에 종묘가 있지, 뒤에는 산이 있지, 그것을 정통적인 왕궁 그랜드 디자인에다가 맞추려면, 종묘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고, 더구나 그 뒷산은 전부 까야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간단히 말해 그리 해서 평지를 구축해서 왕궁을 만들었다가는 나라 살림이 거덜난다. 돈 때문에 저리했을 뿐이다. 그리하다 보니, 아니 그리 해놓고 보니, 그런 대로 창덕궁이 괜찮았을 뿐이다. 숲도 좋고, 나무도 많으니 좋았을 뿐이다. 이는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해 놓고 보니 좋아서, 경복궁이 법궁으로 군림하던 시기에도 왕들은 허허벌판 경복궁보다 창덕궁이 좋아 창덕궁을 자주 찾았을 뿐이다. 


함에도 창덕궁이라든가 조선왕릉이라든가, 이번 전통산사는 물론이고 틈만 나면, 자연과의 조화를 전가의 보물처럼 써먹는다. 뭐 한국의 유산은 자연과의 조화, 풍수라는 말을 빼면 앙상한 뼈다귀밖에 남지 않는다. 


지겹다. 이젠 그만 써먹어라. 무슨 자연과의 조화야? 


그리고 그 내막을 봐도 자연과의 조화는 개소리에 지나지 않아, 실은 조선왕궁은 창덕궁을 비롯해 실제로는 난개발의 첨단이었다. 땅덩어리는 좁지, 사람은 많지 하니, 좁은 땅에다가 각종 건물을 마구잡이로 지을 수밖에 없었다. 조선후기에 남은 동궐도니 북궐도니 하는 궁궐 그림 봐라. 이런 난개발 지금도 보기 힘들다. 건물 들어갈 만한 곳은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건물들을 세웠다. 그래서 조선시대 궁궐 길은 미로를 연상케 한다. 


조선시대와 그 이전 우리 조상들이 유별나게 미감을 갖추었고, 그에 따라 그런 미감에다가 특출난 디자인 감각을 가미해서 궁궐을 지었다는 통념은 전연 근거가 없다. 그네들 건축기법이 아름답기 짝이 없다느니, 그래서 어디 하나 흠결이 없다느니 하는 주장은 개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네들은 나무를 십년간 바닷물에 말려 썼으니, 터짐이 없네 하는 주장이 지금도 정답처럼 군림한다. 봐라, 그네들 공사는 지금보다 더 날림이었다. 저 큰 경복궁을 복원하는데 수십년 걸렸을 법하지만, 3~5년만에 뚝딱 해치웠다. 


자연과의 조화, 혹은 그 절대의 기반인 풍수는 전통을 보는 절대 잣대가 절대가 절대가 될 수는 결코 없다. 그럼에도 작금의 문화재 현장에서는 각종 개소리가 난무한다. 우리 조상은 그렇지 않았다는 그런 낭설이 지금 이 순간에 횡행한다. 그런 낭설이 지금을 판단하는 잣대가 되어, 뭐 궁궐에서는 담배도 안 피운 걸로 아는 놈도 있다. 에라이...정조는 골초였다. 편전이건 어디서건 담배 연신 벅벅 피워댔다. 불 다 땠다. 임금이 자는 방에 군불이 없을 수는 없다. 단 한 순간도 조선 궁궐에 불이 꺼진 적 없다. 


궁궐을 궁궐답게 가꾸는 일은 담배 벅벅 피게 하고, 군불 연신 때는 일이다. 


아참...한양은 평지에 도성을 세울 수가 없다. 청계천 범람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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