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은 조선 영조(재위 1724-1776) 임금이 즉위 300주년이 되는 해라 해서 이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었음인지, 아니면 누가 내년이 그런 해이니 이를 기념하자 해서일 텐데,
국립중앙박물관이 그 기념 특별전이라 해서 ‘탕탕평평蕩蕩平平-글과 그림의 힘’을 내세운 특별전을 마련하고는 오늘 8일 개막한다.
내년 3월10일까지 박물관 상설전시관 특별전시실을 장식할 이번 기획전은 영조를 내세우기는 했지만,
그와 더불어 그의 사후 임금 자리를 곧바로 물려받은 정조까지 묶어 이 시대를 조선 르네상스로 보는 전통 한문학 시각에 따라
이 두 임금 시대 80년을 주로 정치와 문화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하는 게 아닌가 한다.
전시가 표방하는 ‘탕탕평평蕩蕩平平’이란 저들 임금을 특징짓는 키워드 중 하나인 이른바 탕평책 직접 발단이 된 서경書經 홍범洪範 한 구절이면서, 무엇보다 영조가 저런 정신을 표방했으니, 이른바 사색당파라 해서 갈갈이 찢길 대로 찢긴 정파를 고르게 등용해 태평한 세상을 열겠다는 포부를 담은 말이다.
물론 실제로 그러했는가 하면 그러하지를 못해 때에 따라 왔다라갔다리 했으니 저 말이 영조로서는 군주로서야 이상향 혹은 그를 표방하는 정치구호였을지는 몰라도, 말처럼 쉽지는 않았으니,
사색당파 출현 이후 여느 임금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다른 임금들은 저런 말은 내뱉지는 않았지만, 영조는 뱉었다는 데 있지 않겠는가?
뱉었다면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했으니, 영조한테 패착은 임금은 저런 말은 해서는 안 된다는 금언을 스스로 어겼다 데 있다.
하지만 뱉은 말이니 지키는 모습을 연출하지 아니할 수는 없었으니, 비록 그가 훗날 즉위 50년인가 뭔가 하는 획기를 맞아 그 자신이 회고하는 그 자신의 업적으로 청계천 준설과 더불어 탕평책 구사를 내세우기는 했지만,
암튼 탕평은 정치 선전 구호이지 현실 세계에서 구현할 그것은 못 되었다.
현대국가 시스템이 왜 선거를 통한 all or nothing 게임을 채택했겠는가? 그건 실은 탕평에 대한 부정에 다름 아니다.
객설이 길었다. 저 얘기만 나오면 내가 할 말이 많은지라, 그리되고 말았다 해둔다.
암튼 박물관이 지루한 당쟁 혹은 그 반대로 설정한 탕평을 자칫 다루었다간 역사교과서 되기 십상이라,
이 점을 잊을 리 없는 그네들이 이를 구현하고자 채택한 방법은 그 말 뒤에 붙은 덕지덕지한 수식어 ‘글과 그림’에 방점을 두고자 한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영정조 시대를 글과 그림으로 한번 제대로 보여주자, 뭐 이런 뜻이렸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영조와 정조가 그림은 그렸는지 모르겠지만, 실제로는 남긴 것은 거의 없는 듯하고 대신 저 두 양반 주특기가 야부리라,
이런 야부리는 언제나 글씨로 남기곤 했으니 그래서 저들이 남긴 글씨는 무지막지하게 많다. 현대와 가까운 점도 있겠고, 실제로 저 두 임금님 졸라 똑똑했으며, 또 열라 써제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네들 글씨와 당시 궁중행사를 그린 그림을 필두로 이 시대를 증언하는 54건 88점이 선보인다.
주제가 탕평이니 글과 그림에 드러난 그런 의지를 전하고자 한다. 저를 표방한 영조는 이러한 국정 방침을 정전화하고자 했으니, 이런 국정지침서가 빠질 수는 없는 노릇이고 언해본까지 제작했으니, 참말로 성가신 임금님이셨다.
저 시대 화단 제일인자는 김홍도. 그는 실제 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이자 화가였다. 요새 같으면 김영란법에 걸려들어 날아갔을 텐데,
그래도 임금님 고관대작 시키는 일은 잘하는 방식으로 살아간 김홍도金弘道가 정조 임금님 뜻을 받들어 너희 신하와 백성도 나를 주자 대하듯 하라 해서 <주부자 시의도>라는 그림도 선보인다.
정조는 화성을 건설하고는 자신은 그쪽에서 탱자탱자 상왕 노릇하면서 아들이 정치를 잘 하냐 마냐 감시만 하겠다 했으니, 그 일환으로 1795년으로 행차했으니,
이 행차 그림이 화성원행도 라는 8폭 병풍이라, 그의 시대를 증언하는 작품 목록에서 이 병풍이 빠질 수는 없잖겠는가?
이 행차는 영상으로도 장대하게 제작한 모양이라, 우리네 박물관 주특기가 영상이지 않겠는가? 보여줄 실물이 없으니 영상으로 때워야지 않겠는가?
이 자리에는 <삽살개>라는 그림도 등장한다. 영조가 아꼈다는 화원 화가(말이 좋아 화원화가지 어용화가라는 뜻이다) 김두량金斗樑(1696-1763)이 삽살개를 그리고 영조가 탕평을 따르지 않는 신하를 낮에 길가를 돌아다니는 삽살개에 비유하는 글을 더해 탕평을 따르라는 뜻을 전하는 의지를 표현했다는데 두고 봐야겠다.
이 시대 또 걸물이 있으니 어사 박문수朴文秀(1691-1756). 그 신화는 실상 이정길이 주연한 70년대인가 80년대 드라마였다.
아무튼 그 실상이 과대 왜곡됐건 말건 그의 38세와 60세 초상화가 나란히 등장한다.
나는 아직 전시장을 보지 아니했으므로, 이 정도로 소개는 갈음하고 혹 현장 행차한다면 다른 감회가 일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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