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운동이 일어난 1919년. 그해 12월, 한국 최초의 시멘트 공장인 오노다시멘트 조선 공장이 평양 외곽 강동군 승호리(한국 공군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승호리 철교 폭파작전’의 그 승호리가 맞다)에 설립되자, 조선에는 승호리에서 생산된 현대식 포틀랜드 시멘트를 활용해 콘크리트 건물이 평양에서부터 급속하게 늘어났다.
뒤이어 함경도 문천과 1937년 강원도 삼척에 오노다시멘트 삼척 공장이 연이어 문을 열어 식민지에서 시멘트 생산을 담당한다. (동양그룹의 모태인 동양시멘트가 해방 이후 적산이 된 삼척공장을 인수해 성장한 것으로 오노다시멘트는 아직도 일본 최대의 시멘트 기업이다.)
초점은 시멘트가 아니고 당시 오노다시멘트의 중역(전무)으로서 조선 내 시멘트 생산을 책임진 인물로 훗날 사장까지 역임하는 안도 도요로쿠(安藤豊祿, 1897~1990) 이야기를 하려 한다.
1921년 동경대 공학부를 졸업하고 오노다시멘트에 입사한 그는 이듬해인 1922년에 오노다시멘트 평양 지사에 부임해서 계속 조선에서 일하며 1940년에는 조선오노다시멘트 전무까지 올랐다. 그가 한국을 떠난 것이 1947년이었으니 25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른바 ‘청춘’을 조선에서 보낸 것이다.
이런 그가 훗날 펴낸 회고록 『韓國わが心の故里(한국, 내 마음의 고향)』(原書房, 1984)의 ‘安重根は民衆の心(안중근은 민중의 마음)’이라는 챕터에는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을 당시 이토를 수행하다가 함께 총상을 입은 남만철도 이사 다나카 세이지로(田中淸次郞)가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훌륭한 사람은 안중근”이라고 말한 내용이 나온다.
안 의사를 ‘가장 훌륭한 사람’이라고 평가한 일본인 다나카 세이지로는 1872년 이토 히로부미 고향인 야마구치현 하기에서 태어나 동경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유학을 다녀와서 34세에 만철 이사가 된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 재무대신 코코프체프와 가진 회동에서 이토를 수행하던 다나카는 프랑스어 통역을 맡았다.
회동을 마친 이토가 열차에서 내려 러시아 의장대 사열을 받고 있을 때 안 의사 저격이 있었고 이토는 현장에서 사망하였으며 이토보다 두세 걸음 앞에 있던 다나카는 발뒤꿈치에 총상을 입었다.(바로 그 총알이 현재 일본 헌정기념관 이토 히로부미 코너에 전시되어 있다.)
안 의사에게 총상을 입은 다나카는 앞서 소개한 안도의 대학 선배로 안도가 존경하며 매우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다고 한다.
만철 이사였던 다나카는 당시 시베리아 철도를 이용하는 전 세계 저명인사들을 만날 수 있는 위치에 있던 엘리트였다.
“당신이 이제까지 만난 세계의 여러 사람 중 일본인을 포함해 누가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느냐”라는 (안도의) 질문에 “그(다나카)는 한마디로 ‘그것은 안중근 이다’라고 말했다. 유감이지만... ”
“그때의 안중근의 늠름한 모습과 유연한 언행, 달려든 헌병이나 경찰에게 총알이 아직 한 발 남았음을 주의시키는 태도 등은 그의 인격의 높이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었으며, 이제까지 다나카씨가 본 것 중에 최고였다고 한다.”
평소 존경하던 선배인 다나카에게 이와 같은 말을 들은 안도는 큰 충격을 받고 안중근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고 평양에 근무하며 진남포와 청계동 등 안 의사가 살던 집터를 찾아 두 차례나 답사를 다니기도 한다.
회고록에는 현지에서 만난 조선인들에게 안중근이 살던 집을 아느냐고 묻고는 잘 모른다고 하자 안도 본인이 조선인에게 안중근 집터를 알려주었노라는 얘기도 나온다.
이 내용을 회고록에 공개한 안도는 해방 이후 소련군에 의해 2년간 억류되어 있다가 일본으로 돌아가 1979년 ‘안중근연구회’를 만들었는데 일본 내 안중근 연구는 바로 안도에게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안중근 연구로 유명한 최서면 선생이나 나카노 야스오(中野泰雄) 아세아대 교수 등이 모두 안도와 교분이 두터웠다.
일본인들이 안중근 의사를 존경한다는 얘기를 하면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은데 실제 안 의사에게 총을 맞은 사람부터 존경심을 표현한 것이다.
이렇게 영웅이 탄생하였고 신화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安藤豊祿
#田中淸次郞
#안중근
'南山雜談'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4 안중근 대학생 홍보대사 모집 (40) | 2024.05.04 |
---|---|
독립운동가 후손이 매집했다는 안중근 유묵 (20) | 2024.02.27 |
정조 앞에서 활쏘기 힘 자랑하고 고통없이 간 오재순 (1) | 2024.02.14 |
천운이었던 2020년 1월 동경 출장 (0) | 2024.01.09 |
라키비움 표방하며 재개관한 부산근현대역사관 (1) | 2024.01.0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