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시간이 지난 오후 8시. 드디어 소식이 들려왔다.
낙찰이었다. 그리고 이례적으로 현장에서 낙찰자가 밝혀졌다.
언제나처럼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음에도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더랬다. 설 전부터 예고된 안중근 유묵 <人心朝夕變 山色古今同>(사람 마음은 아침저녁으로 변하지만 산색은 예나 지금이나 같네)의 바로 오늘이었기 때문이다.
작년 12월에 미공개 유묵이라며 <龍虎之雄勢 豈作蚓猫之態>(용과 호랑이의 웅장한 기세를 어찌 지렁이와 고양이의 모습에 비길 수 있는가)가 한국 서예 작품 최고가(19억5천만 원)로 거래된 이래 불과 두 달 만에 다른 미공개 유묵이 거래된 것이다.
이제야 말할 수 있는 바이지만, 실은 작년 추석 연휴가 끝난 10월 초 교토에서 보내온 우편물이 있었다. 그 안에는 일찌기 공개된 적이 없는 유묵 석 점의 사진과 연락처가 적힌 얇은 책자가 들어 있었다. 관심이 있으면 연락을 달라는 메시지였다.
연락을 해보니 고미술상이었다. 일본 내에서도 새로 발견한 유묵임을 알고 있었으며, 한 소장자가 석 점을 가지고 있던 것을 본인이 매입을 했다는 것이었다.
보내준 사진에는 한 점만 표구가 되어 있었고 두 점은 표구도 되어 있지 않은 '날 것'의 상태였다. 원 소장자들은 이 유묵들을 물려받고 펴보지도 않았다고 했다.
원 소장자의 거주지는 도쿄 서쪽으로 후지산을 끼고 있는 야마나시山梨현으로 그 선조가 뤼순 관동도독부에서 경찰로 있었다고 한다.
안 의사 수감시 석 점이나 유묵을 받았다면 안 의사와 분명 교분이 있었을 것인데 원 소장자의 성씨는 비밀이라며 끝내 말해줄 수 없다 했다.
(관동도독부 근무 및 통감부 파견 경찰 중 야마나시현 출신자를 조사 중이다.)
여튼 교토의 고미술상은 이를 한국에 넘기고 싶다며 일괄 매입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매도 희망가액도 제시했다.
당연히(?) 예산이 모자라 매입은 힘들다고 하니 이 석 점이 각기 따로 거래가 되어도 좋으냐고 되묻는다. 이미 개별 매매도 생각해 둔 말이었다.
유물을 조사, 수집하는 학예사로서는 가장 듣고 있기 힘든 말이다. 하나의 소장 내력을 가진 유물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후대에 제각기 흩어져야 한다니.
소장자는 달라져도 한 나라 안에는 있었으면 좋겠다며 대신 모두 한국에 매도해달라는 말로 연락을 마쳤다.
이후 한국 개인 소장가와 경매회사들과 접촉이 있었고 12월에 한 점이, 그리고 두 달이 지나 오늘 한 점이 거래된 것이다.(아직 한 점이 더 남았다. 내용은 밝힐 수 없지만 남은 한 점은 두 글자가 가로로 휘호되어 있다.)
12월 낙찰된 유묵에 이어 오늘도 기업을 운영하는 경제인에게 낙찰되었다. 독립유공자의 후손이니 안 의사 뜻을 받아 고이 간직해주었으면 한다.
#안중근 #유묵
안중근 유묵, 경매서 13억원 낙찰…독립유공자 후손 기업이 구입
2024-02-27 20:12
1910년 뤼순 감옥에서 쓴 '인심조석변산색고금동'
https://www.yna.co.kr/view/AKR20240227163800005?section=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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