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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왕을 따라 기레기가 따라 출정한 신라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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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 반문할 사람(특히 고대사학도)이 없지는 않겠지만, 신라는 왕이 적어도 중고기 친정親征할 때는 사관이 따라 출정했다. 

이는 백제 정벌에 나서 사비로 친정한 김춘추와 그를 이어 일통삼한을 달성한 김법민이 평양으로 출정할 때를 보면 명약관화하다. 

이 전쟁들을 기술한 삼국사기를 보면 일지식으로 전쟁 상황이 정리되었음을 볼 수 있는데, 이건 사관이 대동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김유신 열전에 보이는 고구려 평정 이후 계림으로 귀환하는 도중에 남한주에 다달은 문무왕은 실시하는 대대적인 포상 장면을 볼 때도 더욱 분명하다. .

“옛날 백제의 명농왕明穠王(백제 성왕)이 고리산古利山에서 우리나라를 침략하려 했을 때 유신의 조부 각간 무력武力이 장수가 되어 그들을 맞받아쳐 이겼으며, 승세를 타고 그 왕과 재상 네 명과 사졸들을 사로잡아 그들의 세력을 꺾었다. 또한 유신의 부친 서현舒玄은 양주良州 총관이 되어 여러 차례 백제와 싸워서 예봉을 꺾음으로써 그들이 우리 국경을 침범하지 못하게 하였다.

이로써 변경의 백성들은 편안히 농사와 양잠에 종사하였고, 임금과 신하는 나라에 돌보는 데 근심이 없게 되었다. 지금은 유신이 조부와 부친의 유업을 계승하여 나라의 안위를 맡은 중신이 되었다. 그는 나가서는 장수의 일을 하였고, 들어오면 정승의 일을 하였으니 그 공적이 매우 크다. 만일 공의 가문에 의지하지 않았더라면 나라의 흥망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에게 직위와 상을 어떻게 하여야 옳겠는가?”

여러 신하가 말했다.

“저희들의 생각이 참으로 대왕의 뜻과 같습니다.”

이에 유신에게 태대서발한太大舒發翰의 직위를 제수하고, 식읍을 5백 호로 하였다. 또한 수레와 지팡이를 하사하고, 대전에 오를 때도 추창(趨蹌, 예법에 맞게 허리를 굽히고 빨리 걷는 것)하지 않도록 하였다. 그를 보좌하는 이들에게도 각각 직위를 한 급씩 올려 주었다.

이는 사관이 옆에서 보고 적은 것이다. 어케 아냐고? 기레기가 기레기를 알아본다 해 둔다. 

비단 이뿐이 아니다. 곳곳에서 사관이 대동한 흔적이 간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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