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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장돈장 족도族圖에는 문제의 선화가 善花 라는 표기로 나타난다.
한데 선화는 진평왕의 정실 공주가 아니다.
이를 보면 선화는 신라 진평왕의 여러 후궁 중 한 명인 애리愛理라는 여인에게서 난 딸이다.
후궁의 딸이니 선화는 서녀다. 적통 공주가 아니다.
조선시대 관념으로 보면 옹주翁主다.
옹주가 이웃 나라 왕의 정부인으로 가겠는가?
볼짝 없이 선화는 백제 무왕에게 던져진 후궁이었다.
한데 신통방통하게도 저 미륵사 봉영사리기가 발견되고, 그를 통해 백제 무왕의 정비는 좌평 사택적덕의 딸인 것으로 드러났다.
후궁 선화가 어찌 미륵사를 창건한 발원자로 나타나겠는가?
선화공주가 무왕의 정비라는 삼국유사 기록은 원천에서 오류였다.
다만 왜 오류를 빚었는가 또한 궁구해야 한다. 그가 후궁이건 정궁이건, 신라의 공주(비록 옹주이기는 하지만)가 백제 왕한테로 시집간 사건이 보통 일이겠는가? 그에서 비롯된 후세의 착란이거나, 변형이라 봐야 한다.
아무튼 그것이 오류임을 밝혀준 것은 화랑세기와 자매편인 상장돈장이었다.
이로써 선화공주 탐구는 대단원 막을 내린다.
끝내면서 단 하나 질문을 던진다.
화랑세기는 이미 신라 공주 선화가 백제 무왕의 정비가 아니었음을 대기하고 있었다.
이래도 화랑세기가 우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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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공주의 비밀을 파헤친다] (5) 무왕 왕비가 선화공주라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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