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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욕망의 변주곡, 《화랑세기》(3) 여왕의 눈물겨운 종자투쟁

by taeshik.kim 2018.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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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원고는 2010년 11월 6일 가브리엘관 109호에서 한국고대사탐구학회가 '필사본 <화랑세기>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주제로 개최한 그해 추계학술대회에 '욕망의 변주곡, 《화랑세기》'라는 제목을 발표한 글이며, 그해 이 학회 기관지인 《한국고대사탐구》 제6집에는 '‘世紀의 발견’, 『花郞世紀』'라는 제목으로 투고됐다. 이번에 순차로 연재하는 글은 개중에서도 학회 발표문을 토대로 하되, 오타를 바로잡거나 한자어를 한글병용으로 하는 수준에서 손봤음을 밝힌다.



강진 영랑생가 모란


농촌 출신인 나에게 종묘(種苗)라는 말은 익숙하다. 곡물 종자라는 뜻이다. 이 種苗가 좋아야 곡물 소출이 좋을 것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물론 종자(種子) 혹은 種苗가 좋다 해서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더불어 우리는 사람을 지칭해서도 種子를 운운한다. 사람도 종자를 받기도 한다. 고려 무신 정권 때 노비 반란을 주도한 만덕이 했다는 그 유명한 말, 하지만 실제는 秦 말기 농민반란을 주도한 진승과 오광이 했다는 말, 즉, “王侯將相, 寧有種乎?”에서 種이 갖는 sexual connotation은 매우 짙다.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저명한 문인 유몽인(柳夢寅)의 《어유야담(於于野談)》이 채록한 일화다. 정덕년이라는 사람 집에 시골에서 서생 하나가 과거 시험을 치러 올라와 머물고 있었는데 야밤에 어떤 종가를 지나고 있을 때 일이다. 장사 네댓 명이 불쑥 몰려나오더니 이 서생을 때려 엎고는 마련해온 커다란 자루에 담아 묶어 둘러메고는 이 골목 저 골목 누빈 끝에 담 안으로 던져놓더니 자루를 풀고 정중히 방안으로 모시는데 비단 이부자리가 깔린 신방이었다. 조금 있으니 성장한 여인이 들어와 동침을 청하고 파루(罷漏)의 북소리가 나자 여인은 사라지고 장정 네댓이 다시 나타나 자루에 담아 묶고 골목길을 누비더니 납치해간 종가에 풀어놓은 것이었다. 시골에서는 서생 대신 소금장수나 무시로 장수, 땜통장수 등 뜨내기를 은밀히 들여 동침시키고 입마갯돈을 단단히 주어 은밀하게 씨를 받았다. 


모란씨


이것이 바로 씨받이의 상대 개념인 씨내리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진평왕의 딸로써 아버지가 아들을 두지 못한 까닭에 여자로서 즉위했다는 선덕여왕 덕만이 씨내리를 통해 아들을 낳으려 했다는 명확한 언급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씨내리가 《화랑세기》에는 보이니, 13세 龍春 傳에 이르기를 善德에게 보위를 이을 아들을 얻고자 해서 처음에는 龍春에게 씨를 받고자 했다가 실패하자 삼서지제(三壻之制)를 들어 흠반(欽飯)과 을제(乙祭) 또한 함께 선덕을 ‘시중’들게 했다고 한다. 이 三壻之制의 결론을 말하면 실패로 끝났다. 이들 남자 세 명을 잠자리에 들이고도 아들을 얻지 못하자, 결국 왕위는 眞德에게 돌아간다. 


이에서 말하는 三壻之制는 전후 문맥으로 미뤄 볼 때, 후사인 아들을 얻을 때까지 남자를 세 명 들여 씨를 받는 제도를 말한다. 드라마 얘기가 나온 김에 《선덕여왕》에는 을제가 보이거니와, 20대 앳된 선덕여왕에 대비되어 70대 원로 배우 신구가 扮해 출연하는 바람에 ‘원작’의 묘미를 살리는 데는 아랑곳이 없는 듯하다. 


백모란


선덕이 남자 세 명을 들이고도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내용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와 같은 기존 문헌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했지만, 내가 이미 《화랑세기, 또 하나의 신라》(김영사, 2002)에서 지적했듯이 그런 흔적이 보이지 않는 것과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은 천양의 차이가 난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모두에는 선덕여왕의 앞날을 내다보는 혜지를 말해주는 증거 중 하나의 예화로 기록된 이른바 모란씨 서되 얘기가 그 편린이라고밖에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모란씨 서되 얘기는 익히 알려졌거니와, 요약하자면 선덕은 당 태종 이세민이 모란 그림과 함께 보내준 모란씨 서되를 보고는 그 모란이 꽃을 피워도 향기가 없을 것임을 미리 알았다는 것이거니와, 그 근거로써 이세민이 보낸 모란 그림에 나비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화랑세기》를 내가 ‘괴물’로 치부하는 또 다른 까닭은 바로 이 사례에 단적으로 해당한다. 방금 말한 三壻之制를 담은 《화랑세기》라는 텍스트가 출현하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이 모란씨 서되 이야기를 선덕의 총명함을 말해주는 증좌로써만 소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화랑세기》가 출현한 지금에서는 이 모란씨서되 얘기가 실은 선덕이 아들을 낳기 위해 남자 세 명을 들였으나 아들 낳기에 실패한 史話의 복선이라는 점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화랑세기》가 갖는 폭발성은 바로 이에서 비롯된다. 이런 내용을 어찌 조작해 낼 수 있다는 건지 필자로서는 궁금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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