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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각주론(1) 개설 : 후주後注와 각주脚注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8.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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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코배기 글쓰기 양태를 보면, 주석(注釋 혹은 註釋·annotations)은 논문이나 책 말미로 모는 후주가 압도적이다. 이런 영향이 지대한 일본에서도 소위 학술적인 글쓰기에서는 이런 후주가 압도적이다.

그에 비해 우리도 이 방식을 더러 쓰기도 하나, 대세는 해당 쪽 밑에 본문 설명을 돕는 각주(footnotes)다. 

이 외에도 본문에서 괄호에다 밀어넣는 협주(夾注)도 있다. 이는 실은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통용한 전통적인 주석 표출 방법이다.

나아가 이런 협주가 피인용자 이름과 그의 해당 논문이나 저서 발간 연도만 간단히 적고 상세한 서지는 후주로 몰아넣는 서양식 표출 방법이 있으니, 이 역시 국내 학술계에서는 더러 쓰기도 한다.

하지만 같은 협주라 해도 전통 동아시아 문화권의 그것과 서양의 그것은 차이가 왕청나다.  

蘇輿 찬 춘추번로의증春秋繁露義證. 이는 협주 혹은 미주를 도입해, 본문(본래 텍스트)은 큰 글자로 쓰고, 주석은 해당 대목 밑에 작은 글씨로 써서 주석임을 표시했다. 원래 판각을 보면 미주는 두 줄로 썼다.



우선, 이런 여러 양태의 주석을 보면, 서양 글을 읽으면 후주가 본문 읽기 흐름을 방해한다는 느낌은 거의 없다. 이것이야말로 후주건 각주건, 그 구실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증거일 수 있다.

그렇지만 국산 글은 협주건 후주건 각주건 본문과 번갈아 보지 않으면 진도가 도통 나가지 않는다. 

그것을 두 번째 특징 혹은 차이로 지적할 수 있으니, 주석이 배태한 문화 배경이 다른 까닭이다. 이 짧은 글에서 내가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감이 없지는 않으나, 서양에서 주석은 근대적인 의미에서는 무엇보다 표절 방지가 목적이었다. 내가 아이디어를 도움 받는 곳에서는 그런 사실을 적기하고자 했다. 

물론 이런 기능이 동아시아 문화권이라 해서 다를 수는 없다. 이 표절 문제는 심각해서 벌써 《세설신어》에 표절을 비판하기도 하는 데서 그 깊은 연원을 본다.  

그렇지만 동아시아 문화권의 주석은 그 근간이 본문에 대한 독해의 원활한 흐름 조성이라는 측면이 매우 강했다. 

주석을 의미하는 말이 注였으니, 나중에 이 말과 함께 註라는 말이 병행되기도 했지만, 注는 그 근본 의미가 물을 댄다는 뜻이었으니, 이는 동아시아 문화권이 생각한 주석이 무엇인지를 결정적으로 내보인다. 

용재수필...교감기는 해당 권마다 그 말미에 일괄로 수록한 점에서 일종의 후주後注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후주는 원전 교감에서 흔히 쓴다.


'본문 물대기'를 위한 주석의 대표로 멀리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배송지 《삼국지주》와 유효표 《세설신어주》가 있으니, 이는 진수의 《삼국지》와 유의경의 《세설신어》를 외려 능가하는 위대한 업적으로 평가된다.

이들의 주석이 없으면, 그 원전 읽기는 얼마나 고생했을까 생각하면, 동아시아 문화권이 생각한 주석이 서양의 그것과는 갈 길이 다름을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에서 더욱 발전해 주석은 새로운 사상을 배태한다. 성리학을 집대성했다는 주희의 성과란 실은 사서를 주석한 《사서집주》가 거대한 뿌리다. 주석만을 통해서도 새로운 시대를 연다는 사실을 주희는 여지없이 증명했다. 

하지만, 이런 전통이 있다 해서, 지금의 근대적 학술적 글쓰기까지 그래도 된다는 변명은 될 수 없다.

작금 국내 전업적 학문 종사자들의 전문성 깊은 글들을 보면 본문으로 가야 할 말들이 주석으로 너무나 많이 밀려남을 본다.

주석 없이는 본문을 읽을 수 없는 글이 난무하는 이유다. 이것이 세  번째 특징 혹은 차이다. 


***

이 주석론은 나로서는 필생의 화두 중 하나라, 개중에서도 몇 개 얼개만 간단히 적어둔다.

나아가 이것이 중간 지점에 지나지 않으며, 그 중간 지점이 표출한 생각들은 언제건 바뀔 가능성을 열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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