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우 신동훈 박사가 지적한 말과 같은 궤를 탄다. 조선왕조, 혹은 대한제국이 하필 외세인 일본에 멸망한 일은 우리에 대한 성찰을 시궁창으로 밀어내어 버렸다.
그들이 망한 것은 오로지 일본 제국주의의 침탈에서 말미암았다는 지적은 한쪽만 정당할 수 있다.
구한말 지식인들에게는 그런대로 원시적 형태의 내적 성찰이 있었다. 단재 신채호가 대표적인데 그는 조선사회 내부를 향해서도 갖은 독설을 퍼부었다.
한데 시간이 흘러 60년대 70년대를 지나면서 이런 내적 성찰이 실은 식민지성 당파성론이라 해서 급속도로 금기의 영역으로 밀려나게 되어 그런 생각이 지금도 한국사회를 지배한다.
이것이 실은 타율성론의 다른 버전이다.
이런 과정에서 조선왕조 혹은 그 정점에 있던 고종과 왕비 민씨는 점점 지고지순한 피해자로 둔갑한다. 그 흐름을 주도한 학파가 서울대 국사학과다.
한영우 이태진이 이 흐름을 주도했다. 이런 그들이 국편과 문화재위에도 침투해 문화재청 역시 그 흐름에 포박되었다.
이런 학적 흐름과 더불어 뮤지컬 《명성황후》가 대표하는 공연계 흐름도 무시할 수 없으니 이에서 민씨는 우리가 원하는 국모國母로 주물되었다.
비판은 혹독해야 한다. 고종과 민씨는 부관참시되어야 한다.
더불어 고종과 민씨는 증오하면서도 일본이 아니었으면 우리가 자생적인 자본주의로의 길을 걸었을 것이라는 믿음도 있다. 이른바 내재적 발전론이니 자본주의 맹아론이 그것이다.
이는 벽사 이우성이 주도하고, 강만길과 조동걸, 이만열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들이 나중에는 창작과비평에 안착한다. 이른바 창비사관이다.
역사비평은 창비사관의 아류작이다. 하지만 이 또한 똥물에 튀긴 똥덩이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가정을 전제로 성립한 언설은 용납할 수가 없다. 죽은자식 불알은 언제까지 부둥켜 안으려는가?
창비사관과 역사비평이 한때나마 갈채를 받은 이유는 독재에 대한 저항이었다. 하지만 그 저항을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 그것은 이제 생명을 다했다.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다.
재활용도 필요없고, 완전히 용해되어 없어져야 한다. (2015. 9. 29)
***
이 버전이 시간을 해방 이후로 옮기면, 타도 대상이 미국으로 둔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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