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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 국적 고려인 사진작가가 포착한 고려인의 삶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2.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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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땅에 스며든 고려인의 삶…'까레이치, 고려사람' 사진전
김예나 / 2022-09-06 13:07:40
국립민속박물관, 11월 7일까지 빅토르 안 기증 사진 60여 점 전시

낯선 땅에 스며든 고려인의 삶…′까레이치, 고려사람′ 사진전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고려인의 삶과 역사를 포착해 온 사진작가 빅토르 안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다. 국립민속박물관은 한국과 우즈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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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속박물관이 한국-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 수교 30주년을 기념해 6일 개막한 특별전 《까레이치, 고려사람 Корейцы, Корё сарам》은 사진작가 빅토르 안 Виктор Ан 이라는 분이 민박에 기증한 중앙아시아 고려인 일상 사진 352점을 바탕으로 삼는다. 그에서 엄선한 60여 점으로 중앙아시아 지역 고려인 삶을 그려내고자 한단다.

기증자 빅토르 안은 우즈베키스탄 국적 고려인 사진작가. 구소련 시절인 1978년 이래 고려인을 위한 민족어 신문 《레닌기치 Ленин киӌи》에서 사진기자로 일하기 시작해 같은 민족어 신문인 《고려일보 Корё ильбо》를 거치며 작품활동을 한단다. 그가 고려인 일상에 대한 관심을 두고 본격 작업하기는 80년대 이후라고.

민박은 <재외한인동포 생활문화조사: 중앙아시아> 사업을 벌이다가 인연이 되어 지난 5월에 이들 사진을 기증받게 되었다고 한다.

저 지역 고려인이라면 흔히 카레이스키로 알지만, 러시아어인 이 말은 한국인, 조선인, 고려인을 모두 아우르며, 그 형용사형이며 정확히는 ‘까레이치Корейцы’라 한댄다. 영어 ‘Korean’처럼 러시아어에서 한민족 사람들은 이리 부른단다.

하지만 고려인 스스로는 ‘고려사람 Корё сарам’이라 한다고. 박물관에 의하면 이 ‘고려사람’이라는 말은 고려인들이 그들 조상처럼 연해주의 조선인도 아니고, 멀리 떨어진 조국의 한국인과는 구별되는 어떤 다른 범주의 공동체라고 인식한다는 의미를 담았단다.

이런 고려인 공동체를 떠받치는 바탕은 이역만리 중앙아시아 낯선 땅에 끌려와 생존과 정착을 위해 세대를 거듭하며 고군분투한 기억이란다.

오는 11월 7일까지 선보이는 이번 특별전 주요 출품작을 소개한다.


볏논에서 1979 우즈베키스탄 나망간 주 Namangan Viloyati, Uzbekistan 볏논을 배경으로 촬영한 인물 사진이다. 좌우의 농기구를 든 우즈베크인 노동자와 그 가운데 지시하는 고려인 지도자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이는 농업을 통해 인정받은 고려인의 사회적 위치를 보여준다.

안 아나톨랴의 결혼 1979 우즈베키스탄 시르다리야 주 굴리스탄 시 Gulistan, Sirdaryo Viloyati, Uzbekistan 결혼식을 마치고 부부가 신랑의 집으로 오는 장면이다. 부부는 인형과 리본으로 장식한 차량을 타고 오고, 신랑의 친족들이 안내하며 춤을 추고 있다. 차가 멈추고 신랑과 신부가 내리면, 친족들은 환영의 의미로 보드카 한 잔씩을 권한다.


고려신문 광고 1999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레기스탄 광장 Registon Squere, Samarqand, Uzbekistan 공산당의 소수민족 정책에 힘입어 고려인을 위한 민족어 신문은 소련 해체 전까지 《레닌 기치(Ленин киӌи)》를 제외하고는 발달하지 못했다. 사진 속의 《고려신문》은 1997년 독립된 우즈베키스탄에서 고려인에 의해 창간된 민족어 신문이다. 그 밖에 현재 간행되고 있는 고려인의 민족어 신문으로는 카자흐스탄의 《고려일보》가 있다.

&amp;lsquo;땅집&amp;rsquo; 옆에 선 안 비탈리 1981 러시아 오렌부르크 주 악불락 마을 Akbulak, Orenburg Oblast, Russia 원정농업을 하는 사람들이 임시로 거처하는 집이다. 원정농업을 하는 가구는 파종하는 3월에 집을 떠나 임대한 농지 근처에 만든 &amp;lsquo;땅집&amp;rsquo;에서 머물고, 수확을 하고 난 10월에 원래의 주거지로 돌아온다.

&amp;lsquo;찰떠기&amp;rsquo; 만들기 1992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시 벡테미르 구역 Bektemir District, Tashkent, Uzbekistan 고려인들이 &amp;lsquo;찰떠기(찰떡)&amp;rsquo; 혹은 &amp;lsquo;차르또기&amp;rsquo;이라 부르는 음식을 만드는 모습이다. 떡메로 밥알을 두들기고 뭉개서 만드는 것은 오늘날 한국에서 인절미를 만드는 모습과 같다.

돌잡이 1994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주 볼셰비크 집단농장 Bolshevik Collective Farm, Tashkent Viloyati, Uzbekistan 돌상 위에 놓인 물건 가운데 무엇을 집어 드는지에 따라 아이의 미래를 점치는 풍습으로, 한국에서 행해지는 것과 같다. 고려인의 돌상에는 &amp;lsquo;찰떠기(찰떡)&amp;rsquo; 세 그릇과 쌀과 팥이 각각 한 그릇씩 준비된다.

홍범도의 흉상에 꽃을 바치는 고려인 1995 카자흐스탄 키질로르다 시 Kyzylorda, Kazakhstan 홍범도(Хон Бумдо: 1869-1943)는 일제강점기의 대한독립군 총사령관이자 대한독립군단 부총재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로, 연해주에 머물며 활동하다 1937년 현재의 카자흐스탄 키질로르다로 강제 이주되었다. 그는 고려인의 자랑이자 존경받는 영웅이다. 한국인에게도 홍범도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영웅으로 기억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미 1962년 홍범도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한 바 있고, 2021년에는 홍범도의 유해를 옮겨 와 대전현충원에 안장하며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재차 추서했다.

김병화의 흉상에 꽃을 바치는 고려인들 2015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주 김병화박물관 Kim Pen Khva Museum, Tashkent Viloyati, Uzbekistan 김병화(Ким Пен Хва: 1905-1974)는 소련의 군인이자 정치가로, 폴랴르나야즈베즈다(Полярная звезда) 집단농장을 지도하며 높은 실적을 기록하여 1948년에 &amp;lsquo;노동영웅&amp;rsquo; 칭호를 받았다. 이후 폴랴르나야즈베즈다 집단농장은 이름을 &amp;lsquo;김병화&amp;rsquo;로 바꾸고 박물관을 세워 지금까지도 그를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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