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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

위인을 낳은 역적, 우범선禹範善(1857-1903)의 글씨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1.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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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으로 태어났으면 누구나 좋든 나쁘든, 부모의 그늘을 느끼게 마련이다. 나아가 부모를 닮기를 바라는(또는 더 낫기를 바라는) 주변의 시선을 감내해야 한다.

'왕대밭에 왕대 난다' 같은 속담이 왜 생겼겠는가. 하지만 그런 시선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자식은 어떻게든 고통을 받게 된다.

부모가 세상에 이름을 날릴수록 그 고통은 더욱 커질 것이다. 호부견자虎父犬子라는 말은 그래서 참 잔인하다. 그렇게 태어난 것이 견자犬子라 불리는 그의 죄는 아닐진대.

그런데 때로는 자식이 크게 성공하여 부모를 뛰어넘을 뿐만 아니라 그 허물을 다소나마 덮어주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이 글씨의 주인 우범선과 그 아들 우장춘禹長春(1898-1959)이 그 대표적인 사례라 할 만 하다. 이 부자父子의 이야기는 팟캐스트 "만인만색 역사공작단"의 381화와 382화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어 이 글에서는 생략하고자 한다(바라건대, 꼭 들어주시기를).

http://www.podbbang.com/ch/11600

 

[만인만색] 역사공작단

다양한 시각으로 털어보는 역사학의 시선. 고퀄리티 젊은 연구자 역사생산방송. 들을수록 다시또역시 듣고 싶어지는 만인만색 역사공작단.

www.podbbang.com


19세기 말 일본에 건너온 조선 망명객들은 대개 글씨를 팔아 생계를 유지했고, 도움을 주는 지인들에게도 서화를 주로 선물했다고 한다. 지필묵과 자기 솜씨만 있으면 되고, 당시 일본인들 중에서 서화를 즐기는 이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째 그런 망명객의 대표격이었던 우범선의 글씨가 전한다는 이야기를 못 들어봤다. 궁금하기 짝이 없던 차에 정말 우연히도, 그의 것이라는 글씨 사진을 만나게 되었다.

사진으로 보아도 19세기 말~20세기 초 분들의 글씨와 그 느낌이 비슷하다. 붓에 먹을 푹 찍어 뭉텅뭉텅 적어내려갔는데, 종이가 거칠어서 그랬는지 먹을 너무 되게 갈아서 그랬는지 붓이 좀 끌린 기가 있다.

그래도 글씨가 퍽 능숙하고 나름의 멋도 갖추었다. 낙관 부분에 자홍子洪이라 적었는데 그의 자字 아니면 호號일 테다. 개인적으로는 <서경>의 <홍범洪範>에서 유래한 그의 자 아닌가 하지만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인명사전에서도 알 수 없던 그의 자(나 호)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진품이라면) 이 작품의 가치는 충분히 있지 않을까?

송나라 때 스님인 도잠道潛(1043-?)의 시 "춘만春晩" 기이其二를 썼는데, 망명객 신세인 그의 처지를 빗대 적었다고 하면 지나친 감상일지!

'맥수한'은 보리가 익어갈 즈음 중국 강남 땅에 불어닥치는 일종의 꽃샘추위인데, 이때 강남 사람들은 솜옷을 꺼내 입는다고 한다.

새벽바람 부는 연못에 물결이 마구 이는데 曉風池沼水瀾翻
봄이 다 한 회남 땅에 맥수한麥秀寒이 들었네 春盡淮南麥秀寒
여관은 쇠락해 해가 정오 되도록 사람 없어 院落無人日停午
눈 같은 버들솜만이 난간을 가득 채우네 柳花如雪滿闌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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