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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

호운 박주항의 난초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1.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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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를 하신다는 분들도 '박주항'이라는 이름은 낯설지 모른다.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살았던 분임에도 불구하고 어지간한 사전들, 나아가 <근역서화징> 같은 고전 속에서도 이름 석 자가 확인되지 않아 도대체 행적을 알 길 없는 화가이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전해지는 이야기들을 긁어모아보아도 운현궁 사랑에서 석파란 대필을 했다는 둥 믿기 힘든 사실만 떠돌 뿐이다. 작품이 제법 많이 전해지는 것과는 딴판인데, 남은 작품들도 천편일률, 그렇게 썩 격이 높거나 매력적이지는 않아서 궁금증만 더하고 있었다.

근대기의 많은 한국 동양화가나 서가들이 그렇듯, 그의 작품도 일본에 많이 전한다. 일본인들이 받아놓고 표구 잘 해서 대대로 보관하던 작품들이 요즘 알게 모르게 시장에 많이 나오고 있는데, 그 중 이 난초가 보였다.

난 이파리를 친 각도를 보나 괴석도 아니요 땅도 아닌 언덕배기에 앉힌 품을 보나 호운의 난임엔 틀림없는데, 그의 다른 작품보단 훨씬 깔끔하고 유려하다. 먹의 짙고 옅음을 다루는 솜씨도 능숙하고 화제글씨도 물 흐르듯 거침없다.

이런 솜씨의 작품이 더 있었다면 평가가 달라졌을까? 화제로 쓴 시의 내용이 어쩐지 그의 처지를 보여주는 듯 하다.

텅 빈 골짜기에 아름다운 이 있나니
그윽한 향기, 세상에 없던 자태라네
군자가 차고 다니게 하지 못한다면
다만 날아다니는 구름만 알게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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