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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

마지막 대제학 무정茂亭 정만조鄭萬朝(1858-1936)의 글씨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1.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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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茂亭 정만조鄭萬朝(1858-1936).

그를 일컫는 수식어는 참 다양하기도 하다. 조선 최후의 문형文衡, 조선 말 문단의 거두이자 <용등시화>로 당시 문단의 이모저모를 증언한 문인, 12년간 진도에 유배되어 숱한 제자를 기르고 허백련과 허건을 알아보고서 호를 지어주었던 지인지감知人之鑑의 인물이면서,

조선사편수회에 들어가 <고종실록>, <순종실록> 편찬에 간여하고 중추원 촉탁, 경성제국대학 강사로 일제의 정책에 순응하는 것을 넘어 적극 협조한 친일파라는 딱지가 붙은 문제적 인물이기도 한 정만조...

경성제국대학에서 그의 만년을 지켜본 조용만(1909-1995)의 회고에 따르면 "키는 작고, 머리를 박박 깎고 안경을 썼던" 정만조의 강의는 인기가 거의 없어서 자신과 김태준(1905-1949)이 거의 독선생으로 모시다시피 하여 한국 한시와 당시를 배웠는데, 둘이서만 듣기 아까울 만큼 천하일품의 강의였다고 한다.

김태준은 뒷날 <조선한문학사>를 짓는 그 김태준인데, 한시를 워낙 잘 지어 무정이 '귀애'했다니 그때부터 싹수가 대단했다고 할까.

존경하는 안대회 선생님이 번역하신 <용등시화>를 읽고 친필본이 발견되면 좋겠다 막연히 생각하다가, 그 글씨가 궁금해졌다.

오래 살기도 하고 학자로 이름높았던 만큼 글씨가 많을 법도 한데, 도록이나 인터넷에서 이리저리 찾아보아도 몇 점 보지 못했다.

듣기로 30년 전에는 장당 100만원은 족히 나갔다고 한다. 그만큼 작품이 귀했다는 이야기이다.

하기야 전문 서가書家가 아니었으니...그렇게 잊고 지내다가 우연히 이 작품을 보게 되었다(작품 촬영을 허락해준 소장자께 감사드린다).

자작시 같은데, 梅林 大兄에게 준다고 하였다. 호인지 '우메바야시'라는 일본인인지는 잘 모르겠다.  받은 사람이 꽤 소중히 보관하였는지 배접도 아주 깔끔하게 되어 있다.

부탁받고 즉석에서 썼는지 정제되지 않은 필치이지만, 그럼에도 물 흐르듯 거침없고 능숙해보인다.

문인의 글씨답게 문기文氣가 엿보인다. 같은 집안인 위당爲堂 정인보鄭寅普(1893-1950)의 글씨와도 어딘지 모르게 닮았다.

하지만 정인보의 글씨와 달리 보면서도 마음이 복잡해지는 이유는 그의 행적 때문일까.

본문과 낙관이 잘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크기가 비슷해 균형이 깨져보이는 것도 선입견 때문이라고 하면 지나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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