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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설명이 유독 일본사에 많이 보이며, 지금도 일본사 교과서를 보면 서양사개론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서술되어 있는데,
이는 최종적인 일본사 서술 목적이 자주적 근대화가 성공한 절정에 자연스럽게 발전을 연결시키기 위한 서술이다.
유럽사를 표준으로 놓고,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사를 여기에 끼워 맞추면서 나온 기술이라는 말이다.
이제 일본사의 민낯을 보자.
1860년 이전 일본사가 도대체 어느 구석이 유럽을 닮았다는 말인가?
일본이 한국 중국보다 나았다고 해도 그 차이는 미미했으며 사실 일본과 중국, 한국의 결정적 차이는 이르게는 19세기 말, 20세기 초반이나 되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강화도조약이 등장하는 1876년까지도 일본은 변변한 산업시설 하나 없는 상태였다. 유럽과는 불평등조약을 맺고 있었다.
이 부분을 한국학자들은 직시해야 한다. 막연히 일본에서 이렇게 서술했다 해서 따라가지 말고,
팩트를 봐라. 팩트란 1차 사료다. 개설서 하나 읽고 와서 일본사를 논하지는 말자 이거다.
특히 일본사 개설서에 이차 사료라 할 논문 읽고 와서는 한국사를 논하지 말자. 한국사 원전을 읽을 능력이 안 된다면 더더욱 그렇다.
식민지근대화론 같은 것은 그야말로 거대담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거대담론을 입에 올리는 주장 치고는 지나치게 노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한다.
한국 근대 사료를 들춰봤는가? 그렇다면 일본의 1차 사료를 보고,
그들의 역사서술이 정말 사실에 입각한 것인지, 그것부터 한번 따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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