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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

유혁로柳赫魯라는 인물의 글씨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2.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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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학교에서 갑신정변(1884)을 어떻게 가르치는지 모르겠지만, 예전(이라고 해봤자 20년쯤 전) 교과서에는 개화파가 조선을 개혁하려는 의도로 벌인 사건이라는 식의 긍정 서술이 많았다고 기억한다. 김옥균 위인전도 있었고(물론 거기서 김옥균은 '위인'스럽게 나온다) 역사만화전집 같은 데서도 '젊은 그들'의 행보는 진취적으로 묘사되곤 했다.

하지만 머리가 굵어지면서 다시 본 갑신정변은 그리 긍정이지 않았다. 비유컨대 숯불 속에서 설익은 감자를 꺼내려다 손만 데고 감자마저 떨구어버린 격이랄까. 전개과정만 그랬다면 몰라도 이후 이른바 개화파 행보는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10년을 더 살았으나 허랑하고 만 김옥균은 그렇다 치더라도, 나라를 구하겠다고 일어선 이들이 뒷날 나라 망하는 데 손을 보태고 만 건 지독한 역설이라 해야 할까 당연한 귀결이라 해야 할까.

그런 인물 중에 유혁로(1855-1940)란 이가 있었다. 무관 출신으로 김옥균과 박영효의 보디가드 격이었던 그는 몇 차례 귀국과 망명을 반복하다가 1907년 이후 평안북도 관찰사, 경기도 참여관, 충청북도 지사, 중추원 참의 등을 역임하며 승승장구했다.

그런 그가 남긴 글씨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자기를 '정3품'이라 한 걸 보면 을미사변(1895) 직후 두 번째로 일본에 망명했을 때 쓴 모양이다. 제법 능숙한 행서行書로 썼는데 그 내용이 재미있다.

 

거울은 정밀한 밝음으로써 좋고 나쁘고를 스스로 받아들이게 하고
鏡以精明 美惡自服
저울은 공평하여 사사롭지 않으니 가볍고 무겁고를 스스로 얻게 한다
衡平無私 輕重自得


가와카미川上이란 일본인에게 이 글씨를 써 주면서 유혁로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조선이 거울도 저울도 되지 못하고 기울어가니 내가 어떻게든 구해야겠다는 생각이었을까, 아니면 글씨값을 받아 또 하루를 연명하게 되어 기쁘다는 생각이었을까. 그야 모를 일이다. 

그런데 그가 거울과 저울을 들먹일 만한 삶을 살았는가? 이 글씨 앞에서 혼잣말로나마 짚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삶을 거울로 비추고 저울로 헤아려본다면, 과연 어떨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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