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학부 학생의 교육 목표에 해당하는 것이고
학문을 하는 사람들은 크리에이션, 창조가 되어야 한다.
조선후기-.
우리가 말하는 많은 그 당시 성리학 논쟁들은
이해가 목표였다.
이미 북송 때 다 끝낸 논쟁이 책을 읽다 보니 이해가 안 가
그 이야기를 파고들은 논쟁이 대부분이며
철학적 측면에서는 창조된 내용은 없다 단언할 수 있다.
필자는 도대체 조선후기 수백년간 북송학자들의 논쟁의 그림자만 쫒아다닌 일이 이해가 안 가
중국철학사의 송대 유학자의 주장을 끝까지 파고든 적이 있는데,
조선이 망할 때까지 이 그림자를 종내 못 벗어났다.
퇴계와 고봉의 논쟁을 대단한 철학논쟁인 듯 미화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절대로 중국인들에게는 않는 것이 좋겠다.
퇴계와 고봉은 정확히는 북송대 학자들의 이야기가 서로 상충되는 부분이 있어
그 양쪽 끝을 하나씩 잡고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를 이야기 한 것이지
창조의 영역이 절대로 아니었다.
단순히 술이부작이라는 동양적 전통에서 그런 것이 아니고,
정말 이 두 양반은 자기 머리에서 새로 나온 주장은 전혀 한 게 없다.
전부 정호, 정이 두 사람의 논쟁에 거의 99.9프로가 다 나온다.
이런 건 호락논쟁 등 조선을 풍미한 다른 철학논쟁들도 전부 마찬가지다.
물론 조선후기의 유학자들이 창조한 것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예론이다.
고례라는 것이 아무도 본 적이 없고 구멍이 숭숭 뚫린 넝마주이 옷 같은 존재라
이것을 현실세계에서 구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이건 조선후기의 선비들이 내세울 만한 창작활동이라 할 수 있겠다.
이걸 의미 있다고 볼 수 있느냐 없느냐 그런 가치판단은 뒤로 하고
공리공론이라고 최근까지도 욕을 먹은 예론이야말로 조선후기의 크리에이션이었다는 점,
이기논쟁, 호락논쟁 등 조선후기에 있었다는 철학논쟁은 죄다 북송 때
사대부들의 각주에 불과했다는 점,
이 부분을 유심히 보자.
"외국의 논객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집중"하고,
"이 논리를 국내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우리의 "학문"과 많이 닮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단계에서 우리가 종내 벗어나지 못한다면,
우리는 조선후기 유학자들에 대해서도 입을 닫아야 할 것이다.
별 차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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