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불상은 아마 일본 미술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興福寺北円堂無著像라는 것으로 무려 13세기 작품이다.
이 불상은 작가가 알려져 있다.
소위 케이파의 일원인 운케이다.
운케이는 이 불상의 행정적 건조 책임자가 아니라
실제로 이 불상을 만든 일군의 불사 우두머리이다.
일본의 경우 국보급 불상의 제작자는 상당수 이름이 전해지고 있다.
우리는 불상,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만들어 놓고 나서는 불상을 만든 조각가들의 이름을 물을 필요도 없고,
전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장영실은 실제 제작자가 이름을 전했다는 점에서 기적에 가까운 인물이다.
나머지는 필자가 보기엔 누가 누가 제작했다고 하는 거,
전부 행정 책임자들이다.
아마 어떻게 만드는지도 모르고 얼떨결에 이름 남긴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조선시대 금속활자니 뭐니 누가 누가 만들었다는 거 믿지 않는다.
그 사람들은 소위 출세한 사람들로 그 사업 책임자라는 소리지 그걸 만든 사람들일 리가 없기 때문이다.
불상을 만든 실제 제작자의 이름이 전하는 나라하고,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나라하고
그 격차는 크다.
이런 전통이 우리나라는 계속 되고 있기 때문에
대학에서 교수들이 일찍 연구를 관두고 정치판을 기웃거린다.
후세에 이름 남기기 위해서는 어줍잖은 연구나 하느니
출세하는 게 더 빠르기 때문이다.
운 좋게 크게 출세하면 과연 그 양반이 썼는지도 의심스러운 전집도 남길 수 있을 수도 있고,
그러니 연구 더 하는 거보다는 출세하는 편이 학계에서 이름 남기기 더 좋은 것이다.
이런 풍토가 계속 되는 한
우리나라는 학계 수준이 앞으로도 일본은 고사하고 중국도 앞지를 일 없다.
필자도 이제 60을 목전에 두고 돌이켜 보면
우리나라 학자들의 경우 외국 학자들과 가장 큰 차이는 기술이나 지식이 아니라
학문을 대하는 태도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다.
이런 이야기 쓰고 나니 읽고 불쾌할 분들도 계시리라 보지만,
아니면 무시하면 그만이겠지만,
아마 조금이라도 돌이켜 볼 부분이 이 글 안에 있을 것이라 본다.
*** editor's note ***
조선 후기 불상이나 불화는 대부분 문서가 있는 경우 실제 제작진 명단이 남아 있다.
우리 불상 또한 고려시대 이전에도 그랬을 듯한데 그 문서인 복장유물이 대부분 털려서 모르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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