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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실망 무쌍이었던 조선후기 성리학

by 신동훈 識 2025.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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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이라고 했지만 조선후기 학문과 동의어이다. 

어차피 조선후기에는 성리학밖에 제대로 된 학문이 없었기 때문에. 

여담이지만 필자는 성리학을 한 번 작심하고 파 본 적이 있다. 

따라서 전공자 분들 정도야 안되겠지만 대략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이 뭘 떠들었는지 정도는 파악하고 있다. 

그 당시 조선후기 성리학을 공부하면 정말 실망했던 것은 

임란 이후 수백년 동안 그 많은 선비들이 밥만 먹고 글만 쓰며 살았던 터에 

도대체 창의적인 이론이 단 하나 이 시기에 나온 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물론 조선후기에도 성리학 논쟁은 몇몇 굵직한 것이 있었는데 

그 논쟁들, 

알고 보면 북송대 학자들 사이에 다 있던 이야기라고 하면 믿겠는가? 

사실 16세기의 사단칠정논쟁도 이미 북송대 다 있었던 논쟁이 조선에서 느닷없이 재연된 것인데, 

그건 뭐 조선에 성리학이 정착하는 시기이니 그렇다고 치자. 

17세기에서 19세기까지 그 긴 기간 동안

이 땅의 성리학자들이 죽도록 이야기한 내용들이 전부 북송대 유학자들의 재탕이란 점. 

쉽게 말해 학문의 측면에서 본다면 불임의 시대였다고도 할 수 있다. 

생산이 없이 각주만 열심히 달고 있던. 

보기에 따라서는 이렇게 생산없이 각주만 열심히 달고 있는 조선 학문의 전통이

해방 이후 칠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각주를 다는 대상만 달라졌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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