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조선유학은 성리학 발전사에서 본다면 상당한 수준에 올랐던 것은 사실이다.
이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문제라면 북송-남송때 설정된 염락관민濂洛關閩의 사상 밖으로는
단 한 발자국도 못 나갔다는 것이 문제일 뿐.
"단 한발자국도"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정말 "단 한발자국도" 못 나갔다.
메이지유신 후 일본 학자들의 조선 유학 평을 보면,
중국의 주장을 묵수한 부유腐儒라는 비판이 많이 나온다.
이 비판에 자유로울 수 있을까?
조선유학이 상당한 수준이라는 것과
염락관민을 묵수했다는 건 서로 길항적인 내용이 아니라
둘 다 성립될 수 있는 내용이다.
내가 누구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
이것이 학문의 목적일까?
내가 누구를 완벽하게 비평할 수 있다.
이것이 과연 학문의 목적지일까?
만약 그렇게 알고 간다면
그 최종 종착점은 조선유학의 재탕이 될 것이다.
*** editor's note ***
실상 이 문제는 조선왕조 출발과 관련이 있는데
그 왕조 창업에 직간접으로 관여한 두 거물 정도전과 권근을 보면 더욱 적나라해서
전자의 불씨잡변은 내가 일찍이 모조리 검토한 바 모조리, 단 한 군데서도 창발성 있는 대목은 없고 모조리 표절이었으며
권근의 성리학 이해는 인트러덕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 또한 내 두 눈으로 확인했다.
문제는 이런 흐름이 그 이후에도 진전이 한 발짝도 없었다는 사실 아니겠는가?

반응형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념논총 대신 쓰는 "~~학" (1) | 2025.03.29 |
---|---|
한 번도 제대로 비판 받지 않은 조선 유학 (0) | 2025.03.29 |
이해는 학문의 목적이 아니다 (0) | 2025.03.27 |
불상 제작자를 아는 나라와 모르는 나라 (1) | 2025.03.26 |
실망 무쌍이었던 조선후기 성리학 (0) | 2025.03.2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