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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이화여대박물관의 상차림 《19세기 조선의 풍경》

by 한량 taeshik.kim 2020. 8. 7.


다짜고짜 따졌다.

"누님 요새 홀로서기 하나봐? 턱별전한다매 연락도 미리 안하고 그냥 페북에 질러버리네?"

아이란다. 딱 자바띤다.

"12일 개막이야 왜 이래? 아직 많이 남았어!"

"오잉? 그래? 오늘 보로 갈라 캤디마이 안 대겠꾸마"

"와. 난 지금 밖인데 얘기해 놓을 테니"



난 이 대학 박물관 홍보대사.

장남원 관장은 외부 행사 중인지 택시 타고 냅다 달려갔더니 김주연 선생이 반가이 맞아준다.

신세 지는 일 미안해 조용히 둘러보겠다 하고는 혼자서 진짜로 고즈넉이 감상하는데

순간 용심이 발동한다.

근자 이태리서 셀카 쵤영하다가 유메이나한 석고상 발꼬락을 오스트리아 관광객이 뽀샀다는데 나도 하나 뽀사 보까 했지만 이내 맘 가다듬는다.

그래도 가오가 있지.



19세기 조선의 풍경을 표방한 이화여대박물관 재개관 특별전이다,

19세기라면 우리 안 조선이 외부와 본격 접촉하는 시기라 이 격랑의 시대를 증언하는 전시로 꾸몄다.



그래도 단아를 포장한 사대부 문화는 속에서 꿈틀댔거니와 저런 회화들이 그런 면모를 보여준다고 할까?



이 시대는 담배가 기호품을 착근하는 시대라

담소세를 거두지 않은 점이 나로선 조금 의아하다.



이제 안경도 필수가 되어 더는 큼지막한 판형의 책은 필요치 않게 되었다.

화장문화도 변해갔다.



도자 문화도 덩달아 새옷을 입었으니 중국과 일본 수출용 도자기가 쏟아져 들어와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나갔다.



이국異國이 새로운 화두가 되었으니

그건 지리의 발견과 등치했다.

지리는 지도를 바꿨다,

지구는 둥글었다.

네모난 땅은 더는 설 곳이 없었다.



솟음하는 세계

그래도 신선향은 버릴 수 없었다.

아니 그럴수록 그를 향한 욕망은 커져만 갔다.

서왕모 동왕공 복숭아 나무 아래서 요지경을 만들어갔다.



새 술은 새 부대에!

시대는 서서히 바뀌어갔다.



서울전도 수선전도는 옛옷을 걸치되 이미 다른 모습으로 변종을 낳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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