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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철의 잡동산이雜同散異

인광노引光奴, 성냥개비

by taeshik.kim 2021.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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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경제》 권4. <잡방 등촉>에

인광노(引光奴 성냥개비): 광솔[松明]은 쪼개어 작은 조각을 만들되 종이처럼 얇게 만들어 유황(硫黃)을 녹여 그 끝에 발라두었다가 밤의 급한 일이 있을 적에 이것을 사용하여 불을 붙이면 즉시 붙게 된다. 어떤 때는 화피(樺皮)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너무 급히 타서 쉽게 꺼지기 때문에 오래 타는 광솔만은 못하다.

라고 하였고, 《청장관전서》에서는

항주(杭州) 사람이 소나무를 깎아 작은 조각을 만들되 얇기는 종이처럼 하고, 유황(硫黃)을 녹여 그 끝에 바른 다음 이름하여 발촉(發燭) 또는 쉬아제후비(焠兒齊后妃)라고 하였는데, 가난한 자가 발촉을 업으로 한 것은 이것이 그 시초이다.《청이록(淸異錄)》에,
“삼목(杉木)을 얇게 깎아 유황을 바르고 이를 인광노(引光奴)라고 부른다.”
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버드나무를 깎아서 만들고 단지 석류황(石硫黃)이라고 이름한다.

라고 하였다. 청장관전서의 이 내용은 陶宗儀 《輟耕錄‧發燭》: “ 杭 人削松木為小片, 其薄如紙, 鎔硫黃, 塗木片頂分許, 名曰發燭, 又曰焠兒, 蓋以發火及代燈燭用也。”라는 것을 인용한 것이다.


인광노는 화시(火柴), 발촉(發燭), 화촌(火寸), 화촉(樺燭)이라고도 한다.

 

*** 台植補 ***

현재까지 알려진 조선시대 인광노 실물은 독일에서 발견됐으니 아래는 그것을 알린 내 기사다. 

 

2011.10.19 11:27:41
<조선시대 성냥 '인광노' 독일서 찾았다>
국립문화재연구소, 그라시 민속박물관 조사  

 

인광노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우리나라 풍속에는 화(樺)나무 껍질로 많이 만드는데 처음에는 새벽에 일어나 글 읽는 자가 만들었다. 부싯돌에 인화(引火) 물질을 대고서 부쇠로 친 다음 유황에다가 불꽃을 일으키면 등불 켜기가 쉽다고 한다. 화나무는 북쪽 지방에서 생산되는데 껍질은 활에도 붙일 만하다."    

조선후기 성호 이익(李瀷)의 박물학서 성호사설(星湖僿說) 중 제4권 만물문(萬物門)에 보이는 인광노(引光奴)에 대한 설명이다. 

인광노는 요즘의 성냥이다. 그 재료로 언급한 화(樺)나무는 벚나무, 왕벚나무, 자작나무 등에 해당하지만, 북쪽 지방에서 난다는 이익의 언급으로 볼 때는 자작나무를 지칭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동안 자작나무로 만들었다는 인광노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려진 적은 없었다. 실물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런 조선시대 성냥인 인광노가 독일에서 발견됐다.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영원)는 2002년부터 시행한 국외 소재 한국문화재조사 연구사업의 하나로 지난 8월 독일 라이프치히 소재 그라시 민속박물관(Grassi Museum, Leipzig) 소장품을 조사한 결과 인광노를 비롯해 현재 국내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조선시대 유물을 확인했다고 19일 밝혔다.
 
이 박물관 컬렉션 중에는 17~18세기 상류층이 사용한 은입사 자물쇠와 18세기 흑칠함, 대(竹)못으로 수리한 나막신, 그리고 인광노가 있다고 연구소는 덧붙였다. 

이 중에서도 인광노는 "성호사설이나 산림경제(山林經濟) 같은 문헌에는 보이지만 실물이 남아 있지 않았는데, 이번 조사로 그 실체를 확인함으로써 조선시대 생활사 연구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판단한다"고 연구소는 말했다. 

이밖에도 이 박물관에서는 조선시대 각종 생활유물 5백여 건 1천여 점이 확인됐다. 

연구소는 2013년까지 조사를 진행해 그 결과를 종합보고서로 정리하기로 했다. 
 
taeshi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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