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도 썼지만 우리는 한국문화의 인쇄문화에 대해 무덤덤하다.
세계최초의 금속활자
팔만대장경
그리고 많은 고서적이 처음부터 인쇄되어 간행되었는데
인쇄는 당연한 거 아닌가? 라고 생각한다.
인쇄야 우리만 한 것도 아니고,
옆에 중국은 우리보다 더 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텐데
그게 뭐 대수냐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필자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인쇄가 대단하다 아니다를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금속활자가 대단하다, 팔만대장경이 대단하다 이 이야기가 아니라,
인쇄를 문화적 측면에서가 아니라
경제적 측면에서 한번 보자 이 말이다.
중국의 목판인쇄는 당연하다.
거대한 대륙에 무수히 많은 식자층이 있기 때문이다.
인구의 절대다수가 문맹이라 해도 백명 중 한명만 글을 읽어도
인구 1억이면 식자층이 100만명이 나온다.
목판은 당연히 도입될 것이다.
반면 일본은
가마쿠라시대에서 전국시대까지도
일본 사무라이들은 거의 한문 원전 서적을 못읽었다.
그렇다고 글을 못 읽은 것은 아닌데
필자가 쓴 것처럼 그들의 글은 가나로서 소통하고
가나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을 위한 군담 문학 등이 수고본으로 필사되어 책으로 만들어졌지만
전국시대가 종식될 때까지도 목판인쇄에 의한 책의 보급은 일본에서 제대로 시도되지 않았다.
반면 에도시대가 되면서 비로소 일본의 많은 책은 인쇄되어 배포되기 시작한다.
필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러한 차이를 우리는 문화적 수준차로 보고 싶어하는 욕망이 강하다.
물론 그런 측면도 있겠다.
책의 보급은 문명의 수준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한국이 전근대 시기,
지식 보급을 위해 책을 만들 때 인쇄를 택한 것은
중국이 하니까 따라 한 것이라기 보다
경제적 논리에 따른 것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목판일변도의 인쇄를 보완하는 과정에서 금속활자도 출현한 것이다.
인쇄문화를 경제적 측면에서 보자.
이것이 필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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