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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인천시립박물관의 1947년 경주고적조사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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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립박물관 개관 70주년 기념 도록 <박물관 70년, 기억의 문을 열다>를 보다 재미있는 장면이 있어 몇 자 적는다.

21쪽에 보니 1947년 5월에 있었던 '경주고적 연구조사'에 관한 기록이다. 5월 09일 자 '자유신문'에 '인천박물관서 경주 고적 조사'라는 제목으로 실린 기사는 다음과 같다.

   "인천시립박물관에서는 고적을 조사코저 금번
   경주고적 연구조사단을 조직하고 오는 26일에 인천을
   출발하야 동 31일에 돌아오기로 되였다 하는데
   조사단장에는 인천시립박물관장 이경성씨이며,
   동조사단은 다음과 같이 4반으로 구성되였다 한다.
   ☆미술반 = 이건영씨 (인천시립미술관장) 외 수명
   ☆학술반 = 이영식씨 외 수명 ☆사진반 = 최ㅇㅇ씨
   외 수명"


우선 4반이라 되어 있는데, 기사에는 3반으로 나누어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 박물관 관장을 따로 1반으로 해서 4반이라 했을지도 모른다.

사진반 반장은 신문 판독이 어려웠는지 '최ㅇㅇ'라 불명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당시 '자유신문'을 찾아보니 사진반의 반장은 '최영환(崔榮煥)'이다.

이건영(李建英)은 청전 이상범의 아들로 당시 꽤 유명했던 동양화가이다. 후에 한국전쟁 중 월북한다. 이경성과 가까워 시립미술관장을 맡고 있었다.

이영식(李榮植)은 고고학자인 것 같은데, 행적을 잘 모르겠다.





당시 조사단은 불국사 등 경주 고적을 살펴보고 '석굴암(石窟菴)'에 올라간다. 이들은 석굴암에서 방명록에 이름을 남긴다.

마침 그때 석굴암에 들렸을 때, 이름을 남긴 방명록을 용케도 필자가 가지고 있다. 그 면을 살펴보니 여러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인천박물관(仁川博物館)
   이경성(李慶成)
   이건영(李建榮)
   이영식(李榮植)
   이무영(李茂榮)
   이필년(李弼年)


방명록 한 장의 아래 쪽으로 무슨 '이씨' 종친회 하듯, 이씨 성을 가진 다섯 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 인천박물관 글씨와 이씨 다섯 명의 이름은 한 사람이 대리해서 모두 쓴 것으로 보인다.

그 위로 '최석재(崔錫在)'와 읽기 어려운 필체로 '장ㅇㅇ (張ㅇㅇ)'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이들 모두 인천박물관의 조사단 일원으로 보인다.

'최석재'와 '이무영'은 본래 화가였는데, 당시에는 박물관에 관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당시 신문에 사진반 반장인 최영환이 '최씨'였는데, 이 최석재와는 어떤 관계였는지 모르겠다.

최영환도 조사단원이었으니 방명록에 서명이 있을텐데, 왜 없는지 그 이유도 알 수 없다.

여하튼 그 옛날 해방 공간에 인천박물관 조사단이 석굴암에 올라갔는데, 그 때의 기록이 내 손에 있으니 생각할수록 신기한 일이다. ^^


***


이상 미술평론가 황정수 선생 오늘자 페이스북 글인데 박물관 역사에서 흥미로운 대목이라 전재한다.

인천시립박물관은 한국 최초의 공립박물관이란 점에서 대서특필해야 한다.

물론 한국 공립박물관은 식민지시대 부립박물관에 직접 뿌리를 두며 그것은 다시 각지에서 발흥한 고적연구회를 자양분으로 삼는다.

저 글에 아래와 같은 평도 있다.

안그래도 이건영 논문 쓰고 있었는데 반가운 자료네요 선생님!
이경성 초대로 이건영은 인천미술동인회 및 인천시립우리예술관장 등 활동했습니다.

이경성은 인천시립박물관 관장, 이건영은 인천시립우리예술관 관장이었습니다. 저때 경주 갔다와서 이건영은 <국제보도>에 스케치도 실었고요. 그때 저들이 삐라 날리다가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귀한 자료 잘 봤습니다 선생님!! (홍선후, 한국미술사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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