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안암캠퍼스 본관 앞마당에는 중앙학교와 보성전문학교를 인수하고 고려대를 창립한 인촌仁村 김성수金性洙(1891~1955) 동상이 본관을 등지고 남면한 입상立像 형태로 섰으니, 전면에서 바라보면 저 모습이고
본관에서 바라보면 이 모습이다.
이 동상은 작품성에서 압권인데, 저 시대 동상을 이리 만드는 사람은 김경승金景承(1915~1992) 딱 한 명이 있을 뿐이다.
그 압도하는 힘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데, 그의 조각은 뒷면에서 바라볼 때 더욱 빛을 발한다.
저와 비슷한 시기, 김경승은 연세대에서는 김성수에 견줄 용재庸齋 백낙준白樂濬(1895~1985) 동상도 제작하는데, 이건 좌상坐像이라는 점이 다르다.
이 동상 후면에 붙은 제작 내력은 다음과 같다.
높이 3.424m
조각 김경승金景承
조수 민복진 閔福鎭
동상 건립문 찬撰 교우회장 이병도李丙燾
서書 재단주무이사 이활李活
그 건립문은 이렇다. 이 건립문은 창건 당시 세운 것이 별도로 있고, 그 글자를 알아보기 어렵다 생각했음인지, 문구는 그대로 따서 새로 만들어 넣은 것 두 종류가 있다. 아래가 새로 만들어 세운 것이며
다음이 동상 창건 당시 건립문이다.
탈초하면 아래와 같다.
인촌 김성수 선생 동상 건립문
민족자립의 대본大本이 첫째 교육에 있음을 깨닫고 일제의 억압과 싸워가며 이 사업을 완수한 이는 곧 인촌 김성수 선생이었다.
선생의 사업이 허다하지만 특히 교육은 그가 지상사명으로 삼아 물심을 기울여 일생을 여기에 바쳤던 것이다.
선생은 본시 고창 출생으로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을 마치고 돌아오자 단기 4248년(1915년) 중앙학교를 맡아 일익확장日益擴張, 다시 그 경영을 반석위에 놓고자 4262년(1929년) 재단법인 중앙학원을 창설하였다.
그후 2년에 걸친 구미유람歐美遊覽에서 또 깊이 느낀 바 있어 4265년(1932년) 보성전문학교를 이어받아 전기前記 재단 경영 밑에 두고 안암동 넓은 지역을 택하여 괄목할 시설을 이룩하니 영재육성과 아울러 민족문화배양의 일대요람一大搖籃을 만들고자 함이었다.
갈망渴望의 해방을 맞이하자 익翼 4279년(1946년) 드디어 보성전문학교를 개편하여 고려대학교로 승격시키고 한층 더 내용을 확충하니 그의 포부는 실로 원대하였다.
아! 선생은 4288년(1955년) 아깝게도 65세로 세상을 떠났으나 애국애족의 발로에서 교육사업에 진췌盡瘁한 그 숭고한 정신, 치밀한 경영, 거룩한 공헌은 길이 후세의 사표가 되고 남음이 있으리라.
고대교우가 중심이 되어 본교 관계 유지들과 함께 선생의 높은 덕행을 추모기념하고자 모교 교정에 이 동상을 모신 것이다.
단기 4292년(1959년) 5월 5일 건립
고려대학교 교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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