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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앞에서 쓴 것처럼 한반도 도작이 일본을 건너간 후에는 잡곡을 누르고
한반도보다 더 전면적 도작 사회로 성장하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이유는 아래 근거 때문이다.
아열대 식물인 벼는 당연히 위도와 평균기온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처음 야요이문화가 배태된 서일본 일대는 한반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평균기온이 높다.
한반도 중부 일대와 비슷한 평균기온은 놀랍게도 혼슈 북부 일대의 고산지역을 빼놓고는 거의 없다.
한반도가 중국 대륙의 황하-양자강 사이의 공간 어디쯤 해당된다면,
서일본은 중국 대륙의 양자강 이남에 해당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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